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그 전모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은 '혁명'이라는 사실이다.
10~14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 올라간 윌리엄 포사이스의 '헤테로토피아'는 현대무용의 최전선을 달리는 안무가의 작품답게 관습을 깨뜨리는 혁신과 창조로 가득했다. 신체, 안무, 공간, 관객, 보는 방법 등에 관한 기존 개념이나 규칙은 무용지물이다.
프로그램북에 실린 인터뷰에서 포사이스는 "나는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작업하지 않는다"며 "들으라, 보라, 그리고 웃어라"고 했지만, 워낙 낯선 경험에 어리둥절했는지 관객의 태도는 소극적인 편이었다. 첫날 공연 후 무대 뒤에서 만난 포사이스는 "관객이 얌전하다(polite)"며 "내일은 다르겠지요?"라고 말했다.
회당 관객을 300명으로 제한한 이 공연은 객석을 모두 막고 무대에서 진행됐다. 무대 위에 묵직한 검은 커튼으로 분리된 두 개의 방이 있다. 수십 개의 책상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방은 피아노 한 대만 놓인 다른 방을 위한 일종의 오케스트라 피트다. 이쪽 방의 무용수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알 수 없는 말로 소통 아닌 소통을 하고 기이한 몸짓으로 공간을 흐트러뜨린다. 책상 아래로 기어다니거나 드러누운 채 다리만 책상 위로 내놓고 노래를 하고, 책상 위에서 쿵쾅거리며 몸을 비틀고 세상에 없는 단어의 알파벳을 늘어놓기도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저쪽 방의 무용수는 이쪽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기묘한 동작으로 '번역'해낸다. 무용수는 양쪽 방을 오간다. 관객도 이동하면서 공연을 본다.
'헤테로토피아', 즉 '낯선, 다른, 혼종하는 공간'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이해하기 힘든 사건의 연속이다. 초점은 '번역'이다. 무용수도, 관객도, 알 수 없는 소리를 듣고 번역하는 데 집중한다. 이 정교하게 짜인 무질서는 수많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언어의 감옥을 뚫고 나갈 수 있을까. 단일한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이 실은 얼마나 다층적이고 이질적인가. 포사이스가 창조한 '헤테로토피아'는 이를테면 우주의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잇는 통로인 웜홀 같은 것이다. 웜홀은 시간 여행의 출구이자 입구다. 포사이스는 같은 3차원 공간에 있으면서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차원을 횡단하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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