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12일 개헌 논의 기구를 설치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개헌 논의에 본격적으로 불이 붙을지 주목된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하는 9차 개헌 이후 여야 합의로 개헌 논의 기구를 구성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끈다. 특히 개헌론이 갖는 폭발력을 감안하면 새 정부 초기 개헌론이 본격 거론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개헌 논의는 17,18대 국회 때도 화두가 됐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말인 20007년 권력구조를 4년 중임제로 바꾸고 대선과 총선 시기를 일치시키는 이른바 '원 포인트'개헌을 제안했지만 당시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18대 국회 때도 김형오 국회의장이 국회의장 산하에 헌법연구자문위원회까지 설치하는 등 개헌 논의가 무성했지만 역시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처럼 개헌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른바 '87년 체제'가 시대적 역할을 다했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권력 집중으로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만들어낸 만큼 권력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4년 중임제나 분권형 대통령제(외치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가 맡는 방식)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여기에다 통일을 대비한 영토 조항 수정, 시대 변화를 반영한 기본권 조항 수정, 감사원 국회 이관 등의 내용까지 더해지면 개헌 논의 대상은 한층 방대해진다.
개헌론이 민감한 이슈이지만 현재 여야 정치권에서 개헌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19대 국회 들어 지난 2월 구성된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에는 여야 의원 95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자체 개헌안을 마련해 국회 발의까지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대선 기간에는 여야 공히 개헌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4년 중임제로의 개헌 추진을 언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 논의 기구가 구성되면 개헌 논의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많다. 다만 실제 개헌 추진 논의에 속도가 붙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당장 정권 초기라는 점이 변수이다. 이제 막 정권이 출범한데다 안보 위기와 경제 위기 등 중요한 국정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는 것은 청와대로선 큰 부담이다. 정권 초기 국정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데 개헌론이 불붙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다면 난감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새누리당 고위관계자가 "논의를 당장 하자는 것은 아니고 여러 얘기가 있으니까 장기적 관점에서 정리해 보자는 취지"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여야가 국회 특위를 구성하지 않고 일단 원내대표가 협의해 논의 기구를 구성하기로 한 것도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더구나 권력구조 개편 방향에 대한 각 정파의 생각이 제각각이어서 합의점 도출도 쉽지 않다. 때문에 과거처럼 논의만 무성하고 결론을 내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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