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12일 한국을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을 잇따라 만나 북한의 올바른 선택을 강조한 데에는 '도발 억제'와 '대화 재개'라는 두 가지 메시지가 동시에 담겨 있다.
케리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 윤 장관과의 회담을 거론하며 "우리는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은 그러나 "무수단 미사일 발사는 국제사회 전체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국제적 의무를 받아들이고 비핵화의 방향으로 나가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태도 변화가 대화의 전제조건임을 분명히 못박은 것이다.
한미 양국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북한 군부의 오판에 따른 우발적인 군사 행동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지난해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지난 2월에는 3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최근 한달 동안 도발 위협의 수위를 높이며 한반도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켜 왔다. 따라서 한미 양국이 이날 한 목소리로 북한의 핵 보유와 미사일 발사 위협을 비판하며 확고한 공조체제를 과시한 것은 북한에 강력한 경고 신호를 보내 추가적인 도발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케리 장관은 "미국은 동맹국을 확고히 지킬 것"이라며 대북 억지력을 거듭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한미 양국은 북한이 대화에 응하고 변화의 길로 나선다면 얼마든지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를 구축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제시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박 대통령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11일 북한에 대화를 제의한 데 이어 미국 정부 내에서 비둘기파로 분류되는 케리 장관이 이날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을 거론한 것은 향후 북한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케리 장관은 이날 "6자회담은 물론 양자대화도 할 수 있다"며 북미 대화 가능성을 열어뒀다.
박 대통령이 이날 케리 장관 면담에 앞서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을 접견한 자리에서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로 북한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북한이 올바른 변화의 길로 나선다면 우리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본격 가동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편 케리 장관은 한국에 이어 13일 중국, 14일 일본을 찾는다. 미국과 동북아 3국이 북한의 도발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케리 장관은 지속적으로 대북 메시지를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케리 장관의 순방 일정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북한은 케리 장관이 한국을 방문한 12일에는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한미 양국의 논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북한이 13일 미사일을 쏜다면 외교장관 회담이 갖는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초강수를 던지는 셈이어서 미중 양국의 압박과 북한의 반발이 격하게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케리 장관이 일본에 가 있는 14일을 북한이 발사일로 택한다면 케리 장관의 메시지를 더 기다릴 필요도 없이 제 길을 가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우리 군 당국이 유력한 발사일로 점치고 있는 15일은 케리 장관이 미국으로 돌아간 직후 시점이다. 북한이 이날 발사를 감행한다면 한중일 3국과 미국의 도발 억제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강경 노선을 고수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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