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안전하지 않다. (사계절 발행)는 꽃을 따느라 정신없이 숲을 헤매다 늑대를 만난 동화 속 빨간 모자 이야기를 오늘날 버전으로 재현한다. 아픈 할머니에게 먹을 것을 좀 챙겨다 드리기 위해 혼자 길을 떠난 소피아는 별세계 같은 도심의 신기한 볼거리에 눈이 팔린다. 장난감 가게에서 나가는 문을 잘못 찾아 '큰 길로만 가라'는 엄마의 말을 어기게 되는데, 후미진 뒷골목에서 불량배들을 만나지만 곧 한 아저씨가 할머니 집까지 태워다 준다. 그리고 소피아는 다음날까지 집에 돌아가지 못한다.
평소에 알고 지내거나 또는 친절을 베푸는 이가 선한 가면을 쓴 늑대라는 섬뜩한 사실을 말하는 이 책은 성폭행과 성추행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루지만 충격적인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소녀가 할머니집 앞에까지 왔지만 다음날에야 구출된다는 내용을 통해 그동안 있었던 일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연령별로 아이들에게 일러줘야 할 사실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한 배려다. 학부모 지도안도 부록으로 담겼다. 2008년 안데르센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삽화가 대열에 선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섬세한 그림 속에 갖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에런 프리시 글. 서애경 옮김. 5세 이상. 1만9,000원.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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