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람들은 햄버거 체인점 'McDonald'를 '마쿠도나루도'라고 읽는다. 일본인의 영어 발음을 비웃고 나아가 한국식 발음이 원음에 가깝다는 자부심을 과시하려는 한국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잘 끄집어 낸다. 한국식 발음은 물론 '맥도날드'다. 영어 원어민에게 물었다. 어느 쪽이 더 나아요? 풋 하고 먼저 웃기부터 한다. "둘 다 엉터리요."
'언어는 생각의 감옥'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많은 반론이 있지만 적어도 언어가 얼마나 인간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인지를 잘 대변한다. 게다가 언어만큼 한 집단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나타내주는 것도 없다. 외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로버트 할리는 부산 사투리를 유창하게 구사할 때 바로 '하 서방'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남과 나를 구별 짓는 강력한 징표가 된다는 점이 바로 언어를 무기로 만든다. 간토대지진 때 자경단들이 조선인을 구별해 내기 위해 '쥬고엔고짓센(十五円五十錢)' 발음을 시켜 본 것과 같은 사례는 구약성경에서부터 등장해 세계사에 사례가 숱하다.
주간지 의 언어 관련 블로그 주요 필자인 미국 언론인 로버트 레인 그린의 (원제 'You Are What You Speak')는 언어의 이 같은 사회적인 역할과 기능, 부작용을 비판적으로 짚어본 흥미로운 책이다.
책에서 저자가 시종일관 비판의 표적으로 삼는 것은 말에 대한 '잔소리꾼'이다. 늘 올바른 문법을 따지고 들거나, 요즘은 우리말(그게 영어건 한국어건)이 타락했다고 한탄하고, 다른 언어가 모국어를 훼손하고 있다고 경계의 눈빛을 반짝이는 사람들 말이다. 특히 '자기네의 언어는 특별하다는 믿음이 자기네와 다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과 결합할 때' 정치인이나 관료 또는 교사들은 특정 언어를 치켜세우고 다른 것은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언어 자체에 개입하려 한다. 나아가 근대 민족주의가 소수집단의 언어들을 파괴하거나, 인접언어 사용자들을 국경 밖으로 추방하거나, 표준어를 모르는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낳았을 때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바벨탑에서 시작해 언어에 관련된 갖은 이야기들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내면서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어떤 언어보다 우월하고 과학적인 언어란 과연 있을까. 영어처럼 어휘가 많은 언어가 가장 훌륭한 언어일까. 그는 그것을 '편견이자 어리석음'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브라질과 콜롬비아의 800명도 되지 않는 주민이 쓰는 투유카어는 '증거성'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이 언어는 어떤 사실을 전할 때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를 동사의 접미사를 달리 해 알려준다. '어떤 소년이 축구를 했다'는 말을 듣고 그것을 봐서 안 건지, 누구에게 전해 들어서 안 건지, 축구가 끝난 뒤 그 소년의 흙투성이 신발을 보고 추측한 건지를 알 수 있다는 거다. 흑인 영어는 표준 영어를 훼손하는 잘못된 영어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것도 잘못이다. 영어의 변이형일 따름이고 나름대로 훌륭한 문법을 갖춘 언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언어를 제대로 사랑하는 것은 문법이나 용법이 틀린 언어를 개탄하고 앉아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정해진 용법이 아니라도 틀린 것으로 취급해서는 안 되며, 한 지역에 둘 이상의 언어가 존재하는 상황이나 한 언어 안에 두 개의 변이형이 공존하는 양층언어 상황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언어에 대한 유별난 관심과 재능을 보였고 지금은 8개 국어를 구사하는 저자는 프랑스어도 독일어도 모르고 지독한 미국 남부 사투리를 썼던 자신의 아버지를 '말의 달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의 말이 웃겼고, 뜨거웠고, 설득력이 있었고 듣는 사람을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언어에서 중요한 것은 '규칙'이나 '단어'가 아니라 바로 '소통'이다. 그리고 저자는 언어를 대할 때 깐깐한 소리나 오만함, 민족주의 대신 '융통성과 겸허함, 다언어주의'를 권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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