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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경전을 둘러싼 참혹한 사랑과 중국 대륙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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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경전을 둘러싼 참혹한 사랑과 중국 대륙의 역사

입력
2013.04.1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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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사라진 보물이 있다. 청(淸) 제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상해 조계에서 만주국으로 향하던 일제 군용기에서 이로 물어 뜯어 두 조각 낸 뒤 창 밖으로 던져버린 불경 족자가 그것이다. 1128년 8월 중국 법문사의 불탑이 벼락에 맞아 무너지며 모습을 드러낸 뒤 송(宋) 휘종을 거쳐 명ㆍ청 황제들의 어보로 전해진 이 족자에는 8세기경 모래 바람에 사라진 실크로드 왕국, 툼추크 왕국의 언어로 적은 '본생경'이 담겨있다.

문화혁명을 경험한 중국출신 프랑스 영화감독 겸 소설가인 저자는 붓다의 전생담 500여 편이 실린 '본생경'(자카타)의 행방을 통해 두 남녀의 슬픈 사랑과 중국 근대사의 비극을 묘연하게 그린다. 1978년 프랑스유학생으로 베이징에서 공부하게 된 여자 주인공은 영화 '마지막 황제' 제작회의에 통역을 참석했다가 '본생경'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후 청나라 황족의 딸과 프랑스 동양학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툼추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툼추크는'마르코폴로 동방견문록 주석서'를 쓴 동양학자로 중국에 귀화했지만 중국정부에 의해 반동으로 몰려 수십 년간 수용소에 감금돼 강제 노동을 하다가 결국 '암퇘지와 수간을 했다'는 터무니 없는 이유로 집단 폭행을 당해 살해당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뒤 주인공 곁을 떠난다.

이야기는 이후 10년이 흘러 툼추크가 미얀마의 승려가 되고 주인공은 동양학자가 된 뒤 두 사람 사이에 놓여진 고통과 숨겨진 사연들의 이면을 한 꺼풀씩 풀어낸다. 이 과정에서 서로 동떨어진 듯 보이는 이야기들은 연쇄적인 파동을 일으키며 하나의 귀결을 향해 간다. 주인공들이 이생에서는 결단코 이해할 수 없었던 삶의 비의들은 마지막 종장에 가서야 비로소 그 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마침내 달도 뜨지 않은 밤에 발을 헛디뎌 절벽으로 떨어질 위기에 놓인 나그네가 풀더미를 붙잡고 있다가 '손을 놓아라 너의 발 밑이 땅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경전의 마지막 구절을 여주인공이 해독하게 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세세생생 거듭된 삶에서 자기를 온전히 버리고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전생담인 '본생경'의 형식과 의미를 모두 현대적인 서사로 재해석하는 방식이 낯설고도 아름답다. 결코 쉽게 읽히지 않지만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길고 짜릿한 여운이 남는 건 그래서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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