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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집단적 믿음 뜻하는 ‘에드셀’ 백악관은 ‘北 제재’에드셀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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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집단적 믿음 뜻하는 ‘에드셀’ 백악관은 ‘北 제재’에드셀에 빠져…

입력
2013.04.1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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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전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는 신형 차 '에드셀'을 공개했다. 포드는 에드셀이 엄청나게 팔릴 것이라고 기대하고 요란하게 광고했다. 그러나 에드셀은 출시되자 마자 실패했고 역사상 5대 최악의 차로 평가 받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당시 미국 디트로이트의 엔지니어들은 성공보다는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큰 치명적인 집단적 사고에 빠졌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 정책과 관련해 일종의 '에드셀 문제'를 갖고 있는 것 같아 걱정되는 측면이 있다. 조지 W 부시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워싱턴의 많은 정책 결정자들은 북한에 대한 집단적 믿음에 사로잡히게 됐다. 북한과 대화하는 것 자체를 북한 당국이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으로 받아들일 것이란 점과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핵무기 개발이라는 생각으로부터 북한을 벗어나게 하려면 대북 제재와 군사적 위협을 강화해야 한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이런 정책은 완전히 실패했지만 워싱턴의 그 누구도 실패를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은 동아태 차관보 같은 요직을 맡은 인사들이 '새로운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려 한다. 그러나 백악관이 이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이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에 더 많이 의지할수록 중국 당국이 북 측에 '미국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확신을 심어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중국은 이런 측면에선 어느 정도 도움이 되겠지만 워싱턴의 일부 세력이 여전히 원하는 바인 북한의 붕괴나 정권교체 쪽으로 밀어붙이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북한 김정은의 새로운 리더십을 상대하고 있다. 그는 지난 60년 간 성공적이지 못했던 게임의 법칙을 바꿀 준비가 돼 있는 것 같다. 외부에서 이 같은 극적인 변화를 지켜 보는 사람은 '김정은이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때때로 보여 주었던 자제심이 없다'고 여길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과 정부 관료들은 김정은이 선대를 능가하는 공갈과 위협을 구사함으로써 북한을 극도로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김정은의 기행만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북한의 변화를 규정하는 것은 워싱턴의 '에드셀리안(Edselianㆍ에드셀을 실패하게 한 문제점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는 어차피 김정은과 대화할 수 없어. 그는 데니스 로드맨을 통해서나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이잖아"라는 말만 부담 없이 할 수 있게 만들 뿐이다.

이 같은 유동적 상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나는 그의 부모를 잘 알지만 박 대통령은 아버지의 강철 같은 의지와 어머니의 동정심을 물려 받은 사람이다.

박 대통령은 금명간 방한하는 존 케리 장관과 회담을 갖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은 현명하기 때문에 대북 압박과 제재 반복이 효과가 없다는 점에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자신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에게 평화 협상에 대한 대화를 하고 싶고 그것이 평화 조약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속내임을 분명히 했다. 평화 협상이 진행되려면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워싱턴과 평양 사이엔 전혀 신뢰가 없다.

박 대통령은 아직 미완성인 자신의 대북 정책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책 내용 자체는 올바른 방향으로 첫 발을 뗀 것이라고 본다. 서울에서 존 케리 장관을 만나는 것이 신뢰 조성 조치 같은 작은 진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어 박 대통령이 5월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날 때 이 문제를 구체화하기를 기대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중동 순방에서 직접 개입의 힘을 보여 주었다. 그는 그간 한반도 상황에 대한 발언을 현명하게 절제해 왔지만 이제 새로운 사고를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다. '에드셀' 같은 대북 정책을 이어가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고, 결국 분쟁이라는 비극으로 귀결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책을 고수한 사람들에겐 '그들이 원하는 것은 평화 조약이었는데 우리는 왜 싸웠단 말인가' 라는 비문(碑文)만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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