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방영되고 있는 TV프로그램 가운데 '아빠 어디가?'라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필자도 두어 번을 보았는데 제법 재미가 있다. 아빠들의 서툰 아이 돌보기, 놀아주기, 아이들과 함께 세상 일들을 체험하기와 더불어 아이들이 겪는 시행착오와 순진한 반응 등을 엿보는 것이 흥미를 끈다. 그런데 왜 이런 TV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까.
이 TV프로그램의 인기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얼마나 소외되어 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동안 아버지들이 얼마나 어린 자녀들과 함께 하지 못했으면, 엄마없이 아버지들이 아이들과 바깥에 나가서 하루밤을 지내면서 이런 저런 경험을 해 보는데 그렇게 서툴고 어줍잖은 일이 많이 벌어질까 하는 점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는 교육경쟁 때문에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놀이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세상일, 재미들을 놓치고 있구나 하는 점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커가는 자녀를 둔 아버지들이 자녀들과 놀아주고 세상의 다양한 경험을 같이하면서 소통하고 교육하는 것은 아버지들의 자연스럽고 당연한 역할인데, '아빠 어디가?'를 통해서 우리는 그동안 잃어버렸던 아버지의 역할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있다.
남성의 가정내 관계와 역할이 어디 어린 자녀와의 관계에서만 그러하겠는가. 남편으로서 아내와의 대화, 중고생 자녀와의 소통 그리고 장성한 자녀와의 소통에서도 유사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동네에 사는 바로 옆 이웃과의 관계는 더욱 소원하여 제대로 인사도 트지 못한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결국 남성들은 가정에서 아버지, 남편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소외되고 있고 지역사회나 공동체에서도 소외되어 있다. 이렇게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소외된 채 직장만을 위한 세월이 20~30년이 된 뒤 퇴직을 하는 순간, 남성들은 직장에서 쌓았던 인간관계는 끊어지거나 약화된 채 가정과 지역사회로 복귀를 하게 된다. 그러나 가정과 지역사회에서는 퇴직한 남성들이 새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적거나 혹은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가족이나 이웃들과 새롭고 편안한 관계를 구축하기도 쉽지 않다. 이리하여 퇴직한 남성들은 가족, 이웃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소통도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외롭고 불행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은 건 당연하다. 요즘처럼 고령시대에 노인이 되어 고독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
그러면 남성들은 왜 이렇게 가정에서 그리고 지역에서 소외될까. 그것은 남성들이 주로 직장생활에 몰입을 하느라 가정생활, 지역공동체 속에서 자기가 해야 할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남성들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직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가족들과 함께 할 시간, 지역공동체 속에서 이웃들과 보낼 시간을 확보할 수 없다. 남성 가장들은 가정과 지역공동체에 관한 일들은 전업주부인 부인들에게 맡겨두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먹여살리는 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녀, 부인, 이웃들은 아버지, 남편, 같은 이웃으로서 소통하고 제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더구나 요즘과 같은 핵가족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결국 직장 중심의 생활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것을 요구한다. 직장에서의 장시간 노동, 연장근로나 휴일근로를 상습적으로 하는 문화와 직장 최우선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적어도 일과시간 뒤에는 가정을 위해서, 이웃과의 만남을 위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가족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경우 직장에서의 노동시간을 조절하거나 줄여서 근무할 수도 있어야 한다. 가정생활을 내팽개치다시피하고 직장생활 우선으로 하는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산업화시대에 만들어져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는 직장의 장시간 노동문화는 남성 가장들이 가족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웃과의 긴밀한 관계를 쌓아나가기 위해서 개혁되어야 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