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결혼하는 열 쌍 중 두세 쌍이 주례 없는 결혼식을 올리고 있다. 아무래도 주례를 고집하는 부모들의 고집이 만만치 않지만 막상 식을 올리고 나면 부모들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덤벼들었다가는 큰 코 다친다. 딱히 매뉴얼이 없어 가뜩이나 결혼 준비로 바쁜 신랑 신부가 전체적인 웨딩 코디네이터 역할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식순은 물론 주례를 대신 할 프로그램을 신랑 신부가 직접 짜야 해 신경 쓸 것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5월의 신랑 신부를 위해 주례 없는 결혼식을 올린 선배들의 노하우를 엿본다.
개성을 살린 맞춤 식순
보통 예식장마다 정해진 식순이 있지만 한두 시간쯤 시간이 넉넉한 경우라면 개성 있는 식순을 연출할 수 있다. 올해 3월 결혼식을 올린 김성훈(38)씨는 "예식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신경 써서 짜다 보니 신부와 대화를 나눌 시간도 더 늘어 좋았으나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많아 하객들이 나중엔 좀 지루해했다"며 인터넷에 떠도는 식순을 택하지 말고 직접 결혼식을 연출하되 시간 배분을 꼼꼼히 체크하라고 조언했다.
주례 없는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각본대로 진행된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 많은 이벤트를 넣기보다는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자가 주례 없는 결혼식을 알린 후 신랑 신부 부모님이 개식사와 축사를 겸한 인사말을 하는 순서가 이어진다. 신랑 신부가 화답하는 편지 낭독 등으로 부모님께 고마움을 전할 때는 코 끝이 찡한 감동적인 분위기가 연출된다. 동영상과 축가 또는 이벤트 등을 중간중간 배치하면 단란한 분위기를 최대한 부각시킬 수 있다.
사회자가 끼어들 수 있는 부분도 많기 때문에 진지하게 진행하면서도 돌발 상황에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연륜 있는 사회자를 섭외하는 게 좋다. 개그맨과 성우가 소속되어 있는 전문 업체를 택했다는 변희섭(31)씨는 "식을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친구들이 사회를 고사해 전문 사회자를 섭외했다"며 미리 사회자 멘트를 충실하게 준비해 가족적인 분위기로 식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른들에게 인기 성장 동영상
"친척들이 제 어린 시절 사진 슬라이드를 보며 좋아들 하시더라고요. 남편의 성장 배경도 한 눈에 볼 수 있어서 더 친근감이 생겼다고들 하시고." 가족과 친척들 위주로 소규모 호텔 예식을 한 이지은(32)씨는 성장 동영상이 어른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고 적극 추천한다. 전문업체에 맡기지 않더라도 만들기 쉽고 CD로 구워서 예식장에 건네주기만 하면 된다. 다른 프로그램이 많다면 부모님께 쓰는 편지 등 편지 낭독 코너에 배경 영상으로 깔아도 좋다.
축가나 마술쇼 등 볼거리를 많이 넣어 하객 맞춤용 축제를 꾸미는 경우도 있다. 과거 사회자의 짓궂은 질문이나 신랑 체력테스트 등으로 억지 웃음을 유발하는 대신 요즘엔 신랑이나 신부가 직접 노래를 부르는 이벤트 준비를 마다하지 않는 추세다. 주례가 없을 경우 혼인서약서 낭독이 문제일 것 같지만, 신랑 신부가 둘만의 약속을 담은 혼인서약서를 작성해 읽으면 된다. 평소에 들으면 닭살 돋을 말도 이날만은 좌중의 웃음을 끌어내는 청량제다.
감동적인 양가 부모 편지 낭독
소중하게 키운 아들 딸을 떠나보내는 부모는 결혼식의 또다른 주인공이다. 주례 없는 결혼식은 가족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 치러지기 때문에 식이 끝난 후에도 부모님의 허전함이 덜하다는 것도 장점. 부모가 하객 앞에 나서는 것을 꺼린다면 무리하기보다는 미리 마련해 놓은 성혼선언문만 읽거나 간단한 인사 정도로 넘어가는 등 여건에 맞춰서 준비한다.
부모 자식 간에 편지를 주고 받는 일이 익숙하지 않을 테지만 자식을 가장 잘 알고 아끼는 부모가 직접 쓴 편지는 어떤 주례사보다 감동적이다. 지난해 가을 딸을 결혼시킨 박예숙(60)씨는 "남편이랑 함께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몇 번 울컥 눈물이 났지만 옛 추억이 새롭고 더 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처음엔 무슨 말을 쓸까 막막했는데 편지를 쓰다 보니 길어지더라"고 말했다.
양가가 따로 마음에 둔 주례가 있을 경우라면 주례 없는 결혼식은 양가가 괜한 자존심 싸움을 벌이는 것을 막는 효과도 있다. 자녀의 결혼식에 부모가 덕담을 해준다는 뜻 깊은 의미도 더해진다. 아들 결혼식에 주례를 대신해 덕담을 건넸다는 김두식(65)씨는 "주례를 서달라는 요청은 많이 들어오는데 정작 하나뿐인 아들 결혼식에는 덕담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아쉬웠는데, 자녀들이 요청을 해와 더없이 기뻤다"며 주례 없는 결혼식을 적극 추천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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