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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일·농사일 병행… '이모작 삶' 대만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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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일·농사일 병행… '이모작 삶' 대만족이에요"

입력
2013.04.10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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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자락의 나지막한 산들에 둘러싸인 경남 하동군 악양리. 박경리 대하소설 의 무대 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 옆동네인 이곳 부계마을에 귀농 6년차 30대 부부 가족이 살고 있다. 남편 전광진(38) 아내 서혜영(35) 그리고 아이 둘 아진(5) 이헌(3).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귀농ㆍ귀촌인 통계를 보면 지난해 시골로 이주한 사람이 4만7,000명을 넘는다. 에 나오는 대로 섬진강이 코앞이고 논농사 밭농사 잘 되는 이곳도 귀농ㆍ귀촌 인구가 전체의 20%는 된다. 부부의 귀농 자체가 별날 건 없다.

재미있는 건 서울서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다 악양에 내려온 이들이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출판사를 차려 책을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찌감치 귀농의 꿈을 키워오던 이들은 시골로 내려와서 출판일도 계속한다는 계획을 애초부터 가지고 있었다. 악양에 자리 잡으면서 진작 책을 낼 셈이었지만 귀농 뒤 정착하는 과정은 머리로 생각했던 것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3년 전에 '상추쌈'이라는 출판사 이름을 정하고도 기회만 봐오다 드디어 올 초에 첫 책 라는 건강관련서를 냈다. 그리고 두어 달 만에 가 최근 나왔다. 귀농ㆍ귀촌해서 농사 아니고도 먹고 사는 건 작가나 예술인들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농사도 짓고 하던 일도 그대로. 그들에게서 귀농의 새로운 양식을 발견한다.

일찌감치 귀농의 꿈을 키워오던 부부가 혜영씨의 고향인 악양행을 결심한 건 2008년. 아직 결혼식을 올리기도 전이었지만 첫 애가 생긴 것이 결정적이었다.

"서울 같은 도시에서 아이 낳으면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맡기게 되고 거기서는 영어 한글 숫자 같은 거 하루종일 가르치고…. 그 나이에 체험해야 할 다른 것도 많은데 교실에 갇혀 손놀림 하는 거만 해서 되겠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어릴 때 시골서 놀며 자라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어요."(서혜영)

아이 둘을 키우는지라 가르치고 배운다는 게 더 각별할 이 부부는 교육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영화에 관심이 많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을 다니다 1년 반 만에 "아카데미는 이제 그만" 하며 선을 그어 버린 혜영씨는 옆동네 목사인 아버지 이야기를 예로 든다. "귀농해서 몇 번이나 배운 논둑 쌓기를 새로 할 때마다 까먹고 물어보는데, 9살 때 외가에서 밥 얻어먹으려고 외삼촌 일 도왔던 아버지는 그때 해보고 50년 동안 안 한 논둑쌓기를 상일꾼처럼 잘 해내요. 몸이 기억하는 것 거죠."

남편 광진씨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는 문학을 공부했지만 미술에 관심이 있어 졸업후 미술전문지 기자를 잠깐 하다 환경운동 하는 친구 소개로 보리출판사의 자매회사 '도토리'에 들어간 그는 편집 취재로 전국을 다니며 할아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듣고 다녔다. 고사리 따서 나물 무치는 이야기, 바다에서 고기 잡는 이야기 등을 들으며 "진짜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대학 문학공부는 완전 헛공부"라고 느꼈다. 바다로 흘러 드는 시냇물 소리만 듣고도 그날 어디로 가면 무슨 고기가 있다는 것을 아는 어부 할아버지 만난 일을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고기잡이 도사에게 "그런 지식을 아이들에게 가르쳐보는 거 어떠냐"고 말하자 "요즘은 일을 가르칠 수 있을 때 애들을 학교에 잡아 놓고 병신 만든다"는 답이 돌아왔다.

농부철학자 윤구병 선생이 사장을 맡은 보리출판사는 우리 전통을 담고, 환경을 보살피는 책을 많이 내는 곳이다. 윤 선생이 주도한 변산공동체는 그런 정신의 실천장 같은 곳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런 것에도 약간은 회의를 가졌다. 예를 들어 공동육아 운동 같은 것들이 의미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도시 육아라는 한계가 있다. 변산 같은 경우는 자기 먹고 사는 수준이 아니라 남에게 나눠줄 것까지 염두에 두는 치열한 프로 농사다. 혜영씨는 "그렇게 살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우리는 우리나 좀 먹고 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귀농ㆍ귀촌 지침은 책으로 숱하게 나와 있다. 퇴직금 탈탈 털어 80평 정도 마당이 딸린 두 칸 시골 집과 천 몇백 평 논밭을 장만해 쌀농사, 밀농사, 갖은 채소 농사 그리고 복숭아 매실 자두 등 과일 농사를 짓는 부부에게서 그런 책에서 쉽게 만나기 힘든 귀농 노하우를 귀담아 들었다.

귀농의 필수는 우선 집 장만인데, 집은 사거나 빌리면 되는 줄 알지만 그 돈만큼 수리비가 많이 나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집을 계속 돌봐야 한다. 도시 아파트처럼 매일 청소기 한 번 돌리고 가끔 유리창이나 닦아주는 수준이 아니다. 부엌 무쇠가마솥 같은 경우 쓰고 나서 깨끗이 닦아서 기름칠 안 해 놓으면 금세 녹이 스는 식이다. 땅은 꼭 싸다고 좋은 게 아니다. 싼 땅은 싼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냥 적당한 값 주고 사는 게 낭패를 보지 않는 방법이다. 주말농장 해보던 경험 가지고 땅에 씨 뿌리고 잘 가꿔주면 된다는 정도 생각으로는 곤란하다. 땅을 돌봐주는 게 아주 중요하? 논둑 관리, 물길 터주기 같은 걸 대충하다가는 비가 많이 오는 날 논둑 흙이 무더기로 쓸려 내려가 아예 농사를 망칠 수 있다.

혜영씨는 인터뷰 중 미국 작가이며 환경운동가인 스콧 니어링의 "4ㆍ4ㆍ4"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생계를 위한 노동 4시간, 지적활동 4시간, 친교를 위한 4시간으로 하루를 보낸다는 삶의 원칙이다. 혜영씨는 "니어링까지는 아니더라도 일하는 시간 배분을 농사와 출판을 2대 1 정도로 할 생각이었지만 초보 농사꾼이라 지금은 농사가 1이고 출판일이 2"라며 "2, 3년 지나면 잘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려 온 걸 후회한 적은 없다"는 부부에게 언제 내려오길 잘 했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먹을 때"다. 서울에서도 생협 같은 데서 사먹었지만 유기농으로 직접 지어 먹는 채소와 밥맛은 그에 비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이 무얼 먹고 어떻게 사는지는 블로그 '봄이네살림'(haeumj.tistory.com)에서 생생한 사진과 함께 엿볼 수 있다.

하동=글ㆍ사진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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