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년 전쯤 평론가 K가 다소간 취기어린 목소리로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거 알아요? 김형 소설은 너무 달콤해." 그것은 힐난의 어조였다. 절친한 사이이긴 하지만 K는 평소, 내 소설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취기를 빌어 난데없이 '달콤론'을 펼쳤을 때 뜻밖에 내게 어떤 자각 같은 게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젊은 혈기를 도통 다스릴 수 없는 나이였다. 어느 인터뷰에서는 내게 소설은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단언하듯이 말한 적도 있다. 정확히는 사건에 개입하는 무의식들의 소요를 묘사하는 것이 바로 나의 소설이라고 주장했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소설을 통해 무언가 스펙타클하고 자극적인 것을 보여줘야만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나는 자극을 모색하기 위해 우선 윤리와 도덕, 관습 등을 아무렇지 않게 타기하고 농간했다. 살인, 섹스, 질투, 음모 같은 것들을 필연적인 고민도 없이 조직했다. 그 결과 내 어떤 소설들은 미학적 진실의 풍경에 가닿지 못하고 살의와 비명만이 난무하는 아수라가 되었을 뿐이다. K가 얘기한 달콤한 느낌이란 바로 이런 자극적인 묘사에 대한 편향을 지적한 것이리라. 그런데 이제 마흔이 넘고 보니 문학은 외려 마음의 소요를 다스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어렴풋이 닿고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 아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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