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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자가 아닌 주술사 내 공연에 메시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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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학자가 아닌 주술사 내 공연에 메시지는 없다”

입력
2013.04.09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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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경계를 넘어 관습 파괴적이고 진보적인 현대예술을 소개하는 축제인 페스티벌 봄(3월 22일~4월 18일)의 올해 프로그램은 가히 용호상박이다. 놀랍고 멋진 작품이 줄줄이 포진한 가운데 그 중에도 하이라이트가 20세기 최고의 안무가, 21세기 춤의 방향을 제시하는 윌리엄 포사이스(64)의 2006년작 '헤테로토피아'다. 10~14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아시아 초연으로 선보일 이 작품은 포사이스의 최신작 중 단연 최고로 꼽힌다. 관객이 무대에 올라와서 봐야 하는 작품이라 1,804석의 객석을 모두 폐쇄하고 회당 300명으로 관객을 제한했다. 전설적인 거장의 내한에 티켓은 진작에 매진됐다.

포사이스가 자신의 무용단 '포사이스 컴퍼니'를 끌고 왔다. 첫 내한이다. 그동안 한국에서 공연된 포사이스 작품은 유니버설발레단이 2008년 라이선스로 선보인 컨템포러리 발레 'In the middle, somewhat elevated'가 유일하다. 다른 작품으로는 무대 공연이 아닌 미술관 전시로 설치 퍼포먼스 2편, '흩어진 군중'(2007년 로댕갤러리)과 '사건의 진실'(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시 'Move')이 소개됐을 뿐이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낯선, 다양한, 혼종된 공간'을 뜻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논문 '다른 공간들'(1967)에서 개념을 차용했다. 이 작품에서 무대는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무용수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음성과 결합해 인식론적 사건을 일으킨다.

9일 기자들을 만난 포사이스는 "여러분을 일종의 속임수로 끌어들이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소리를 듣는 데 집중된 공연이다. 댄서들은 안무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음악을 (몸으로) 지휘한다. 화음 등 음악의 구조에 집중하면서 음악을 따라간다. 그리하여 여러 구조가 중첩되고 다양한 시발점이 발생한다. 무용이나 연극처럼 보이지만, 이 작품의 주목적은 음악을 구현하는 것이다. 무대에 서로 다른 사건이 동시 진행 되는 두 개의 방이 있다. 양 쪽을 오가면서 봐야 하는 작품이다."

작품의 메시지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현답이 돌아왔다.

"나는 메시지를 주지 않는다. 거꾸로 메시지를 던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무엇을표현하기 위해 작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왜 이 작품을 만들었냐고? 모르겠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나는 공연이라는 환경에서 어떤 것들이 나타날 수 있는지 탐색하고 시도한다. 주술사나 샤먼과 비슷하다고 할까. 카드를 읽는다거나 영감을 받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

전통적으로 춤은 음악에 맞춰 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사이스 작품에서 댄서는 음악과 나란히 자신의 내면의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는 이것을 '대위법'(하나의 정선율에 제 2, 제 3의 대선율이 동시 진행하는 작곡 기법)에 비유했다.

"음악이 먼저고 춤이 그 다음이다? 현대무용은 그런 위계가 없고 정해진 규칙도 없다. 귀로 들리는 음악과 무용수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전혀 다르다. 그 둘이 서로 맞아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충돌하게 만드는 것, 무용수 스스로 내적인 음악성을 발현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댄서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면서 작품을 만든다. 내가 먼저 제안하고 그들이 답한다. 그 다음 토론을 한다. 나는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무용수가 좋다."

포사이스는 음악 이야기를 길게 했다. 여기에는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한 배경이 깔려 있다. 그는 1949년 미국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랐다.

"할아버지는 열두 살에 데뷔한 신동 출신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아버지도 피아노를 했다. 그 영향으로 나도 세 가지 악기(플루트, 바순, 바이올린)를 했고 합창단에서 노래도 했다. 미국 중산층 가정 출신답게 로큰롤과 모타운 재즈도 들으면서 컸다.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을 오가면서 성장했기 때문에 바흐 음악에서도 펑크를 느낀다."

포사이스의 예술 인생은 미국 조프리 발레단의 무용수로 출발했다. 이어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7년을 거쳐 1984년부터 20년간 프랑크푸르트발레단 예술감독으로 활동했고, 2004년 자신의 무용단을 만들었다. 초기작은 전형적인 컨템포러리 발레다. 그의 작품은 세계 유명 발레단의 정규 레퍼토리다. 발레로 시작했지만 발레뿐 아니라 무용과 공연의 모든 규칙을 넘어선 혁신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트 등과 공동 작업한 건축적 퍼포먼스 등 그의 작품은 기존 예술의 경계에 갇히지 않고 미래로 전진 중이다.

"나는 발레를 사랑한다. 고전발레를 버린 게 아니다. 몇 주 전에도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 파리 오페라 발레와 작업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발레는 위기라고 생각한다. 발레단이 문제다. 세상이 변했는데, 그들은 발레의 미래가 예전과는 다른 형태로 나타나리란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동안 해온 것만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은 1875년이 아니다."

포사이스의 방한은 현대예술의 향방에 안테나를 세운 애호가들이 학수고대해온 사건이다. 관객들은 창조와 혁신으로 가득찬 일탈을 기대하고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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