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최근 회원들에게 공문을 보내 세무조사 회피 요령을 소개하는 등 전문직 단체를 중심으로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탈세와의 전쟁'에 나선 국세청의 첫 타깃이 된 고소득 전문직ㆍ자영업자들이 현금거래 노출로 급작스런 증가가 예상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조직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지적이다.
8일 세무당국 등에 따르면 의사협회는 최근 회원들에게 공문을 보내 '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해외여행을 연 2회 이상 가지 말라'는 등의 주의사항을 전달했다. 현금거래나 고가 의료기기 등의 비용 처리로 세금을 축소 신고했다가 세무당국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미리 조심하라는 당부인 셈이다.
한 의사는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 정부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세금 처리에 허점이 많은 개업의사들을 집중 공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의하라는 의미로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개업의는 "내달 종합소득세 신고를 앞둔 만큼 부동산 거래를 자제하고 금융채무도 한꺼번에 갚지 말라는 조언을 협회에서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국세청은 최근 고소득 전문직과 대재산가, 역외탈세 등 224명에 대한 기획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여기에는 성형수술, 임플란트 등 고가의 치료비를 현금으로 받아 수십 억원의 매출을 누락한 의사들과 수임 사건의 성공보수를 친인척 명의 계좌로 입금 받아 수십 억원을 빼돌린 변호사 등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때문에 의협의 공문은 납세 의무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지만, 개업의들은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정부가 일부의 잘못을 모든 의사가 탈세하는 것처럼 몰아가면서 갑자기 많은 세금을 걷으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반발했다.
자영업자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특히 정부가 현금영수증 의무발행 규모를 30만원에서 10만원으로 낮춘 데 대해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폐업이 속출하는 상황인데 세금부담을 더 높이면 어떻게 견디란 말이냐"고 토로했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도 "정부가 전문가 집단을 세금을 안 내는 범죄자 취급하고 있다"며 "현실과 맞지 않아 잠재적 범죄자를 양산할 우려가 높은 세법부터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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