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대형마트에서 팔 수 있는 품목을 제한하는 권고를 신규 출점 등으로 기존 상권과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만 적용하기로 했다. 판매제한 권고가 구속력을 가질 수 있도록 국회에 법 개정을 건의하겠다던 시가 유통대기업 등의 반대에 밀려 판매제한 정책을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지난달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보호를 내세워 대형마트에 판매제한을 권고할 수 있는 51개 품목을 선정한 지 불과 한달 만에 철회한 것으로, 대형마트 판매제한 정책이 오락가락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최동윤 시 경제진흥실장은 8일 브리핑을 통해 “지난 3월 발표한 ‘대형마트ㆍ기업형슈퍼마켓(SSM) 판매조정 가능 품목’은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한 것으로 확정된 게 아닌데 그렇게 비춰져 시민에게 혼란을 초래해 유감”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최 실장은 “특정품목 판매제한 권고 정책은 우선 대형유통기업의 신규 출점이나 영업 확장 등으로 기존 상권과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에만 적용하겠다”며 “분쟁이 발생하지 않거나 분쟁이 있어도 합의가 되면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시는 판매제한 권고품목도 연구용역 결과인 51개 품목을 포함해 지역적 특수성이 고려된 품목 중 일부를 선택해 적용할 계획이다.
시는 지난달 8일 한국중소기업학회에 의뢰한 용역 결과를 토대로 대형마트·SSM 판매조정 가능품목 51종을 선정한 바 있다. 지난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으로 시행되고 있는 대형마트ㆍSSM의 출점 제한 및 영업 제한이 골목상권을 살리는 데 실효성이 적다는 연구결과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51개 품목에는 담배ㆍ소주 등 기호식품 4종, 콩나물ㆍ호박 채소 17종, 계란ㆍ두부 등 신선조리식품 9종, 갈치ㆍ고등어 등 수산물 7종, 사골 등 특수부위 정육 5종, 미역ㆍ멸치 등 건어물 8종, 쓰레기 종량제봉투 등이 포함됐다.
대형 유통업체들은 즉각 영업자율권 침해라며 반대 여론몰이에 나섰다. 박원순 시장이 지난달 “품목 선정이나 적용방안은 간담회나 공청회를 통해 의견수렴을 거쳐 절충점을 찾겠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대형마트에 물건을 납품하는 업체 등이 중심이 된 ‘유통악법 철폐 농어민ㆍ중소기업ㆍ영세임대상인 생존대책투쟁위원회’도 “연쇄도산이 우려 된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9일에는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겠다며 시를 압박하고 있다.
시는 홈플러스 합정점과 망원ㆍ망원월드컵시장이 지난 2월 15개 품목에 대한 판매제한에 합의한 사례을 들며, 시의 권고가 없더라도 자율적으로 상생방안이 마련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하지만 대형마트 판매품목 제한에 찬성해온 전통시장ㆍ영세슈퍼마켓 상인들은 실망감을 드러냈다. 진병호 서울상인연합회 회장은 “시가 사실상 품목제한을 철회한 것이 아닌가 상인들의 우려가 크다”며 “시는 품목제한 입법화를 위한 공청회 등의 일정을 당초 약속대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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