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4월10일 새벽, 동토의 땅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날아든 승전보는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단체전에서 이에리사가 중심이 된 한국 여자대표팀이 중국과 일본을 연달아 꺾고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 정부수립 이후 구기 종목을 통틀어 처음으로 거둔 세계대회 우승이었다.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로 짜인 대표팀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고 19세에 불과했던 이에리사는 이 경기로 인해 순식간에 스타가 됐다.
한국은 개인전보다 단체전에 주력했다. 단식 4게임과 복식 1게임을 치르는 단체전에서 한국은 이에리사와 정현숙을 단식에 내세우고 이에리사- 박미라 조를 복식에 투입했다. 당시 신탁은행 소속의 이에리사는 셋 중 나이가 가장 어렸지만 사실상 팀의 에이스였다.
2개조로 나뉜 풀 리그에서 중국, 루마니아, 서독, 프랑스, 유고슬라비아와 함께 B조에 속한 한국은 첫날 루마니아를 비롯해 내리 5연승을 하며 단 한 경기도 내주지 않은 완벽한 경기를 펼쳤다.
문제는 중국이었다. 결승리그 진출은 확정됐지만 예선 성적이 반영되는 대회 규정상 중국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었다. 나란히 5연승을 거둔 양 팀의 경기는 사실상 결승전이나 다름없었다.
4월8일 중국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첫 단식에 이에리사를 내세웠다. 상대는 전진 속공형의 세계랭킹 2위 중국의 정희영. 하지만 하루에 700개씩 드라이버를 연습한 이에리사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2번째 단식에서도 셰이크핸드 정현숙이 지난 대회 선수권자 호옥란을 물리치며 이변을 연출했다. 이어진 3복식에서 이에리사-박미라 조는 중국의 정희영-장립 조에 무릎을 꿇었고, 다시 4단식에 나선 이에리사가 호옥란을 맞아 세트스코어 2-0 완승을 거뒀다.
4월9일에 벌어진 결승 상대는 숙적 일본이었다. 1단식에 나선 이에리사는 일본의 에이스 요코다를 손쉽게 제압했지만 정현숙은 아쉽게 공격형 선수였던 오제키에게 패하고 말았다. 3복식에 나선 이에리사와 박미라는 요코다-오제키 조를 맞아 환상의 콤비플레이를 선보이며 단숨에 두 세트를 따냈고 마침내 마지막 4단식에 나선 이에리사가 2년 전 준결승에서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오제키와 녹색 테이블을 마주했다.
이에리사의 드라이브는 매섭고 강했다. 승리를 확정 짓는 스매싱이 성공하자 한국 선수단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고 중계하는 아나운서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사라예보의 기적은 대한민국의 4월10일 새벽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선수단 귀국 후 전국은 제2의 이에리사를 꿈꾸는 어린이들로 넘쳐나며 탁구 열기로 뒤덮였다. 피겨의 김연아에 못지 않은 열풍이었다.
40년 전 기적의 주역인 이에리사는 태릉선수촌장을 거쳐 국회의원이 됐고 정현숙은 탁구협회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박미라도 서울 신정동에서 탁구교실을 운영 중이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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