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신수동에서 7일 열린 북한이탈주민 김수진(가명·36)씨의 결혼식. 신부 입장 직전, 북에 있는 김씨 아버지를 대신해 김씨의 손을 잡고 식장에 들어가는 김철생(58) 서울 영등포역전파출소 경위가 김씨에게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잘 살아라"고 덕담을 건넸다. 신부대기실에서부터 "오늘따라 유난히 북에 있는 가족들 생각이 난다"며 눈물을 훔치던 김씨도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5년 전에 시작됐다. 당시 마포경찰서 보안과에 근무하던 김 경위는 2008년 탈북한 김씨와 처음 만났다. 김 경위는 자신이 담당하는 마포 지역 탈북자 중에서 유달리 남한 생활에 적극적인 김씨에게 마음이 더 쓰였다.
"탈북자들 중에 기초생활수급비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수진이는 성격이 활달한데다 뭐든 배우려고 하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실제로 김씨는 탈북 이후 제빵사 자격증을 따 제빵사로 근무하다 최근에는 한 탈북자 방송의 리포터로 일하는 등 누구보다 남한 생활에 빠르게 잘 적응했다.
김씨가 이처럼 남한 생활에 수월하게 적응한 데는 김씨의 '5분 대기조'인 김 경위의 도움이 컸다. 대중교통 이용법부터 자격증 취득 방법까지 김 경위에게 전화해 물어보는 등 남한 생활이 어려울 때는 하나부터 열까지 도움을 구했다. 김 경위도 담근 김치를 갖다 줬고, 김씨의 신랑감을 미리 보고는 "성실한데다 잘생기기까지 하다"며 결혼을 적극 권할 만큼 사실상 김씨를 수양딸처럼 돌봤다. 평소 김 경위를 '아빠'라고 부르는 김씨는 "결혼식 때도 신랑이랑 손잡고 들어갈 수 있지만 내가 형사님을 그만큼 믿고 의지하고 있으니까 꼭 같이 들어가고 싶다고 부탁드렸다"고 했다.
김 경위는 "딸 2명을 결혼시켜봐서 잘 안다"며 예식장 마련부터 주례, 사회자, 축가 섭외까지 물심양면으로 김씨의 결혼 준비를 도왔다. 김씨 쪽 하객이 없을 것 같아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날 '큰 일'을 무사히 치른 김 경위는 "가족이 없는 게 늘 신경 쓰였는데 결혼을 해서 새 가족이 생긴다니 마음이 놓인다"며 "무엇보다 서로 마음 위해주며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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