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남동구의 전세 아파트에 사는 김모(43)씨. 최근 수년 간 전셋값 폭등에 시달려 온 그는 4ㆍ1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아파트 구입을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집값이 바닥에 근접했으니 지금 구입해도 큰 손해는 안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미래 인구구조의 변화 등을 생각하면 왠지 께름칙한 게 사실이다.
결국 김씨는 대우건설이 10월 입주 예정인 인천 '송도글로벌캠퍼스 푸르지오'에 적용하는 '프리 리빙제'를 선택하기로 했다. 전용면적 115㎡(47평) 새 아파트를 분양가의 20%만 내고 본인 명의로 등기해 2년간 살아본 뒤 마음에 들면 구입하고 그렇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하는 방식이다. 계약을 해지해도 납부했던 분양가 20%(1억3,000만원)를 위약금 없이 전부 돌려받을 수 있으니 남는 장사인 셈이다.
살아본 뒤 집을 사는 이른바 '전세 분양' 마케팅이 진화하고 있다. 중대형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했던 '전세 분양' 초기에는 살아본 뒤 최종 구입계약을 하지 않는 소비자에게 수천 만원의 위약금을 물렸지만, 최근에는 이마저도 사라지는 추세다. 건설사 입장에선 새 아파트를 주변 전세 시세의 60~70%에 제공하는 만큼 수천 만원의 손해가 불가피하지만, 빈 집을 줄여 집값을 끌어올릴 목적으로 이를 기꺼이 감수하는 것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대우건설은 총 1,703세대 규모의 송도글로벌캠퍼스 푸르지오 미분양분 300여 세대에 대해 2년 간 거주한 뒤 최종 구입 여부를 결정하는 '프리 리빙제'를 적용하고 있다. 대상은 중대형 평형인 전용면적 115㎡(47평)와 134㎡(55평). 계약자는 분양가(전용면적 115㎡ 6억3,000만~6억5,000만원)의 20%를 내고 대우건설이 알선한 중도금 대출로 나머지를 해결한 뒤 2년 간 살아보고 최종 구입 여부를 결정한다. 계약 해지를 원하는 입주자는 위약금 없이 분양가의 20%를 돌려받고 중도금 대출은 대우건설이 떠안는다.
입주자는 주변 전세 시세의 65%인 분양가의 20%(1억3,000만)만 내고 2년간 새 아파트에서 살아볼 수 있는 것이다. 취득세(1,770만원)와 2년 간 중도금 대출이자(4,400만원)는 대우건설이 지원한다. 최종 구입 계약을 맺으면 베란다 확장과 시스템에어컨 비용(2,000만~2,500만원)도 받지 않는다. 8,000만원 가까운 혜택을 보는 셈이다.
GS건설(애프터 리빙)과 롯데건설(리스크 프리)도 작년부터 중대형 미분양을 해소하기 위해 '전세 분양'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입주 2~3년 뒤 계약을 해지하면 롯데건설은 분양가의 1.75%인 취득세를, GS건설은 총 분양가의 3%를 위약금으로 돌려받는 게 대우건설과의 차이점이다.
건설사들이 수천 만원의 손해를 감수하며 '전세 분양' 마케팅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최대한 빨리 아파트 입주율을 높여 집값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신규 단지에 불 꺼진 집이 많을수록 마이너스 프리미엄이 형성되고, 결국 미분양 지속으로 더 큰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세입자에게 해당 단지의 미래가치를 체험하게 해 최종 구입을 유도하려는 속내도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정부의 부동산대책 발표로 시장에 온기가 돌고 있어 '전세 분양' 마케팅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자문팀장은 "전세 구하기가 어렵고 목돈 마련도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전세 분양' 마케팅은 세입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소규모 시행사가 중도금 대출의 주체일 경우엔 계약 내용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시행사가 부도나면 입주자가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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