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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차원 일기장] 우연 대 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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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차원 일기장] 우연 대 필연

입력
2013.04.07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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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럽 입자물리학연구소에서 거대한 가속기 실험을 통해서 힉스 입자로 보이는 새로운 입자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를 두고 물리학의 혁명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간혹 볼 수 있다. 과연 힉스 입자를 발견한 것은 엄청난 일이고 그러한 입자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어떤 의미에서 혁명이라는 말은 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새로 발견된 입자는 이미 40년 전에 그 존재를 예측했던 입자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말 과학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발견은 많은 경우 우연히 일어났다.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한 것이나 베크렐이 방사선을 발견한 것은 전혀 의도하지도, 예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X선과 방사선의 발견으로 인해, 인간은 원자의 내부로 들어가는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현대물리학이 시작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칼 앤더슨이 우주선 속에서 전자의 반입자인 양전자와, 전자의 무거운 형제인 뮤온을 발견한 것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그런 입자가 나타나기는커녕 존재하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했었다.

물리학 분야뿐 아니라 다른 과학 분야에서도 위대한 발견이 우연히 일어난 예는 숱하게 많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을 발견한 일이나, 전도성 플라스틱을 발명해서 2000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시라카와 히데키 교수의 업적은 모두 실험 중에 일어난 실수에서 비롯되었다. 꿈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뱀을 보고 벤젠의 화학 구조를 알아낸 케쿨레의 발견은, 이것을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신의 계시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일다. 좀 더 실용적인 분야에서, 프레온 샘플에서 테프론을 우연히 추출해낸 로이 플렁킷이나, 천연 고무에 황을 섞어서 가열하면 훨씬 튼튼한 인조 고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굿이어 같은 사람도 모두 우연과 행운에 힘입어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다.

우연히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을 행운 덕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일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그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정말 그것을 발견할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늘 듣는 말이지만,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발견은 우연히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강한 핵력의 구조를 확인하기 위해 오메가라고 불리는 입자를 찾았던 니콜라스 사미오스는 10만 장이 넘는 사진 속에서 오직 한 장의 올바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다. 오메가 입자의 성질을 예측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지 않았으면 과연 그 사진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힉스 입자를 발견한 유럽 입자물리연구소의 LHC 가속기는 수소의 원자핵인 양성자 두 개를 1초에 1억 회 이상 충돌시킨다. 이정도 양의 데이터는 인간이 감당할 수 없으므로 엄청난 단계의 선별 작업을 통해 약 100만 개 중의 하나 정도만을 골라서 기록한다. 100만 분의 1이라고 해도 데이터의 양은 1년이면 세계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라는 미국 의회 도서관 장서의 수십 배에 달한다. 이 거대한 데이터 속에서 겨우 몇 백 개의 힉스 입자를 찾기 위해 전 세계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수만 대의 컴퓨터를 가지고 데이터를 분석한다. 무엇을 찾는지 모르고 우연히 힉스 입자를 찾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힉스 입자를 예측했다고 해서 반드시 존재하리라고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므로 이것이 필연적인 결과라고는 할 수 없다. 힉스 입자를 찾는 일은 사실 우연히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욱 획기적인 일이다. 이것은 인간이 지금까지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주를 더 깊이 이해하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고, 진정한 진보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믿게 해준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우리가 자연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신비스러운 일이다.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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