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음대 건물의 한 강의실에선 서툰 바이올린 연주음이 봄비 소리를 뚫고 나지막이 새 나왔다. 바이올린을 켠 이는 이화여대 앞에서 노숙인의 자활을 돕기 위해 발행되는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는 권모씨. 연주라기 보단 그냥 소리를 내 본 것에 불과했지만, 60대인 권씨가 어릴 적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는 감격스런 날이었다.
사연은 이랬다. 이 학교 마케팅학회 회원 14명이 4일 권씨에게 중고 바이올린을 선물한 것이다. 학회 회원 몇 명과 권씨, 그리고 권씨에게 재능기부로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기로 한 이 학교 음대생이 함께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 가서 직접 바이올린을 골랐다.
이들이 바이올린을 선물하기로 계획한 건 올해 초. 지난 1년여간 학교 앞에서 빅이슈를 판매해 온 권씨와 때때로 식사도 함께할 만큼 친분을 쌓아온 학생들은 올해 초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평소 학생들에게 생일과 졸업, MT 때 직접 쓴 붓글씨 등으로 마음을 전해 온 권씨에게 이들은 "꿈을 선물하자"고 뜻을 모았다. 이어 바이올린 구입비 마련, 강사 섭외 등 역할을 분담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권씨는 바이올린 레슨 소식을 접한 지난달 23일 페이스북을 통해 "오매불망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에 날아갈 듯 기쁘다"고 적었다. 그는 첫 레슨 때에도 어린 강사와 학회 회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바이올린을 제대로 잡아본 것도 이날이 처음이라 오후 6시부터 1시간30분 동안 이뤄진 레슨에서 권씨가 배운 건 바이올린과 활을 잡는 방법과 기본적인 음계를 켜 보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꿈을 이룬 수업인 만큼 분위기는 활기로 가득찼다. 권씨가 아직 악보를 읽을 줄 몰라 다음 레슨 땐 악보 수업을 하기로 했다.
권씨는 "학생들의 도움으로 꿈을 이뤘으니 앞으로 열심히 연습해 학생들 앞에서 멋진 바이올린 연주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마케팅 학회장을 맡고 있는 신은지(24ㆍ사회학과)씨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아저씨가 훨씬 많이 좋아하고 있고, 그 나이에도 꿈을 키워 나가겠다고 해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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