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구 가리봉동 일대를 재개발해 문화공간이나 숙박시설을 대폭 늘리면 좋겠다. 해외 바이어들이 오면 변변한 호텔은커녕 머무를 곳이 없어 난감할 지경이다.”(구로디지털 단지 직장인 김모씨)
“중국동포들에게 가리봉동은 제2의 고향이다. 주말이면 고향을 찾듯 전국에서 이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지역의 다문화 특성을 최대한 살려줘야 한다.”(가리봉동 거주 중국동포 백모씨)
7일 서울시와 구로구청 등에 따르면 1964년 서울의 첫 산업수출공단으로 조성돼, 70~80년대 노동운동의 산실이었던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에 이르면 올 상반기중으로 재정비사업이 추진된다. 가리봉동 일대는 국내 주요 벤처기업 등 1만1,400여개 업체가 입주해있는 국가산업단지인 구로ㆍ 가산디지털단지의 배후 지역으로 꼽힌다. 그 동안 이 곳의 낙후된 문화ㆍ주거ㆍ숙박시설의 확충을 위해선 재정비사업이 시급하다는 요구가 빗발쳐왔다. 구로구 역시 국가산업단지의 격에 맞는 지역 재개발을 통해 IT산업의 경쟁력을 도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이 지역에 정착해 살고 있는 1만 여명의 중국동포들과 이들과 공생관계에 있는 주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아 사업 진행에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5일 방문한 구로구 구로디지털단지와 가산디지털단지는 젊은 직장인들로 활기가 넘쳐났다. 이들은 저마다 가리봉동 재개발 필요성을 피력했다. 직장인 김순호(33)씨는 “디지털 단지 중간에 껴 있는 가리봉재정비촉진지구가 하루빨리 개발돼 직장인들이 갈 만한 문화공간이 생기면 좋겠다”며 “가리봉동일대가 강남의 테헤란로처럼 상업 특구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IT산업 현장을 찾는 외국 바이어들을 유치할 만한 호텔이나 부대시설이 없어 난감하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컸다. 디지털 단지에 입주해 있는 한 IT 기업의 간부는 “일대에는 중국동포들을 위한 민박이나 월셋방은 많지만 해외에서 찾아온 손님이 머물 변변한 호텔이 없어 민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구로구에 따르면 디지털단지 내에는 총 1만1,442개의 업체가 입주해, 15만3,707명의 직장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내 호텔 급의 숙박업소는 현재 준공 예정인 곳을 포함 단 2곳뿐이다.
같은 시각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걸어서 10분 위치에 있는 가리봉동 125번지 일대는 점심시간임에도 이곳을 찾는 직장인이나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가리봉시장을 중심으로 중국동포들의 식당들이 즐비해 있지만 불황 탓인지 점심시간에도 일대는 조용하기만 했다.
특히 단지 내 대형 빌딩들이 들어왔지만 이곳에는 여전히 70~80년대 ‘벌집촌’과 같은 쪽방이 남아있었다. 골목 사이 전봇대마다 ‘보증금 50만~100만원, 월 임대료 15만~30만원’이라고 적힌 쪽지광고가 눈에 띄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재개발 반대에 목소리를 높였다. 숙박업을 하는 김모(63)씨는 “산업단지를 만든다고 40여 년 간 터를 잡고 사는 주민들을 몰아낼 수는 없다”며 “모든 지역을 현대화해야 하면 서울에는 다 강남 같은 곳만 있어야 하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또 다른 주민은 “이들 중에는 불법체류자들도 많아 사법기관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월세ㆍ관리비 등을 꼬박꼬박 잘 내기로 유명하다”며 “이들에게 방을 내주고 있는 주민들은 재개발 때문에 중국동포들이 떠나는 걸 원치 않는다”고 귀띔했다. 가리봉동 주민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곳에 등록된 중국동포는 7,000 여명에 달하고, 미등록 동포만도 5,000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작 이곳에 거주하는 중국동포들은 개발에 대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는 입장이다. 신발류를 팔고 있는 한 중국동포는 “불법체류 중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되놓고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지 않냐”며 “가리봉동 일대 주택 등이 낡고 오래돼 주거공간 개선은 필요하지만 일방적인 재개발이 아닌 다문화 특성을 살려가며 거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개발방식이 적용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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