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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김능환 전 대법관이 검사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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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김능환 전 대법관이 검사였다면

입력
2013.04.0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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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 이맘 때, 박근혜 정부의 인사 난맥상이 절정으로 치달을 즈음에 우리는 청량제 같은 보도 하나를 접했다. 대법관 출신인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얘기였다. 그는 이틀 연속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부동산 투기니, 위장 전입이니, 전관예우니 하는, 접두사만 들어도 구역질나는 새 정부 각료 후보자들의 의혹을 한 순간이나마 잊게 했다. 김 전 위원장 본인은 민망했을 수 있겠지만, 국민이 보기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를 목도하는 기쁨을 우리는 잠시 누렸다. "정도가 아니다"는 이유로 새 정부 참여를 고사한 그는 퇴임식 후 자신의 쏘나타 승용차를 직접 몰고 중앙선관위를 떠났다. 다음날, 부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으로 출근해 점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법관의 최고 자리에 올랐던 이의 파격은 어느 날 갑자기 결정한 '즉흥 이벤트'는 아니었을 것이다. 33년의 판사 생활을 하면서 퇴임 이후의 삶을 오래 전부터 고민하고 구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 않았다면 후보들이 줄을 선 국무총리 자리를 마다했겠는가. 총리로 거론됐을 때 "대법관과 중앙선관위원장 했던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 지휘 받아 행정부를 관할하는 총리를 할 수 있겠느냐"고 한 그의 발언은 아직도 국민 기억에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엊그제 검사장급 이상 검찰 고위 간부 인사가 있었다. 김 전 위원장을 새삼 화두에 올린 건 차관급 직책인 고위 검사 인선 내용을 보면서 몇 가지 단상이 떠올라서다.

고착화한 검찰 인사의 법칙은 이번에도 한 치의 오차 없이 적용됐다. '기수 문화'가 판박이처럼 재연된거다. 새 검찰총장이 임명되면 그의 선배나 동기들이 용퇴하는 게 관례였고, 이를 메우는 기수 인사가 쭉 이어졌는데, 이게 재상영된 것이다. 희귀한 장면도 연출됐다. 검사장급 숫자를 줄이는 방안이 검찰개혁안에 포함되면서 검사장 승진이 막힌 19~20기들에게 길을 터주려는 '배려' 때문인지, 채동욱 검찰총장 바로 아래 기수인 사법연수원 15기들이 줄사표를 냈고, 보란 듯이 19기 6명과 20기 2명이 검사장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다른 조직에선 흉내내기 조차 힘든 고난도 인사다.

기실 검찰의 기수 문화는 긍정적인 면도 없진 않다. 조직 특유의 상명하복 시스템에서 검찰총장의 지휘권에 힘을 보탤 수 있고, 여기에 인사 숨통까지 터주는 장점이 있다. 이런 논리가 줄곧 검찰을 지배해오고 있다. 검찰 구성원 누구도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런 기수 문화를 고집해야 하나. 시대와 거꾸로 가는 퇴행적 기수 문화의 폐해를 열거하기란 어렵지 않다. 새로 진용을 갖춘 채총장 체제의 검사장 이상 간부는 대부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다. 수뇌부의 연소화, 곧 '젊은 검사장'들이 즐비하다. 50대 중반 이상이 대부분인 법원의 고위 판사들과 대조적이지 않나. 이러다보니 법원과 검찰 고위 간부의 기수 차 역시 갈수록 벌어지기 마련이다. 사법연수원 10기인 서울고법원장의 검찰 파트너인 서울고검장은 16기로 무려 6기 차이가 난다. '검사장의 꽃'인 서울중앙지검장은 16기이지만 서울중앙지법원장은 11기로 5기 차이다. 나이 차이는 물어보나 마나다.

검찰이 기수 문화의 부작용에 둔감한 것인지,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이웃집' 법원의 변화엔 긴장해야 하지 않을까. 평생법관제 도입을 다른 세상 이야기로 치부해선 곤란하다는 의미다. 이런 토양에서는 김능환 전 위원장 같은 인물이 검찰에서 나오기란 난망하다. 그가 검사였다면 정년을 채웠을 확률이 제로에 가까웠을 것이다. '60세 검사'는 검찰에선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다.

검찰이 격랑에 흔들리는 건 위기이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채 총장은 "근본적인 혁신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위기 해결책"이라고 취임사에서 언급했다. '혁신'엔 기수 문화 파괴도 들어가야 한다고 본다.'검사 김능환'이 나와야 검찰은 박수 받는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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