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인생 끝났구나."
3일 오후 9시쯤 주인이 없는 틈을 노려 서울 강남의 고급빌라를 털던 노인은 신고를 받고 급습한 경찰에 붙잡힌 뒤 이 말을 여러 번 되뇌었다고 한다. 그는 수갑을 채우는 서초경찰서 서초3파출소 김동연 경위에게 "나 조세형이요"라고 했다.
김 경위가 이웃의 신고를 받고 60평(198㎡) 고급빌라의 방으로 들어간 순간 흰색 마스크와 후드 티 차림에 장갑을 낀 채 가방을 들고 있던 조씨는 당황한 듯 볼펜을 들고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김 경위가 가스총으로 경고하자 순순히 굴복했다. 김 경위가 마스크를 벗겼을 때 검정색으로 머리염색을 한데다 수염을 깎은 말끔한 얼굴이어서 조씨는 6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조씨가 들고 있던 가방 안에는 고급 롤렉스 시계와 반지 등 시가 3,000만원 상당의 귀금속 33점이 들어있었다. 현장에는 빌라 유리창을 깨는 데 쓴 '빠루(노루발못뽑이)', 펜치 등 절도연장들이 뒹굴고 있었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이상 그의 말대로 조씨는 더 이상 대도의 길을 걷기 어렵게 됐다. 그의 나이 75세. 절도 누범에다 전과 10범인 조씨가 재판부로부터 정상 참작을 얻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도 그럴 것이 15개월 전인 2011년 12월 금은방 주인과 가족을 위협해 금품을 빼앗은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돼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당시 조씨는 "평생 도둑질은 했지만 강도 짓은 않는다"는 말로 배심원들을 설득했다. 여러 정황증거에도 그의 말이 먹혀 조씨는 무죄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이제는 법의 관용과 허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다.
젊은 시절 부잣집만 골라 훔치고 그 중 일부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줬다고 해서 도둑 중에서도 '대도'라는 이름이 붙었고, 회개의 몸짓으로 목사안수까지 받았던 그의 말로도 결국은 도둑질이었다.
그가 큰 이름을 얻게 된 것은 1983년 훔친 5캐럿짜리 물방울다이아몬드의 역할이 컸다. 다이아몬드 주인이 서슬이 퍼런 5공 시절의 고위관료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씨는 '강자'를 노리는 호기로운 도둑으로 자리매김했고 훔쳤던 일부 금품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줘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1983년 재판대기 중에 탈주하다 무고한 여대생을 인질 삼아 대항하다 경찰이 쏜 가스분사기와 권총 두발을 맞고 검거됐다. 15년을 복역한 조씨는 1998년 출감, 목사로 변신했지만 2000년 일본에서 절도행각을 벌이다 붙잡혀 형을 살았다. 그는 그렇게 75년 인생 가운데 20년 가까이를 감방에서 보냈다.
세상에 나올 때마다 새 삶을 살겠다는 그의 말은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2011년 무죄 선고 후에도 "미화된 '대도'의 모습을 걷어내고 사회에 진 빚을 갚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다시 담을 넘었다. 그는 이번에 붙잡힌 뒤 "임대 사무실을 얻어 선교활동을 계속할 계획이었지만 알고 지내던 무속인에게 3,000만원을 사기 당해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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