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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간호이야기] 질병은 그저 질병일 뿐… 은유적 화법이 반감·고통만 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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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간호이야기] 질병은 그저 질병일 뿐… 은유적 화법이 반감·고통만 줄 수도

입력
2013.04.0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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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그저 병일 뿐

'그와 그녀의 목요일'이란 연극을 보았다. 사랑과 이별을 반복했던 50대 남녀가 매주 만나서 추억이 담긴 주제로 난상토론을 벌인다. 호방한 역사학 교수 정민과 국제분쟁 전문기자 연옥. 이들은 서로를 모르고 살아온 시간보다 알고 지낸 시간이 더 길다. "결혼 빼고 다 해본 사이"다. 그러나 토론은 매번 싸움으로 번지면서 과거의 오해들이 되살아나고 추억에 대해 얼마나 다르게 기억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 연옥이 "나 위암에 걸렸어"하니까, "난 아래암 걸렸다"라고 정민이 이죽거린다. 이 부분은 유머로만 넘길 수 없는 그들의 삶의 태도에 대한 코멘트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는 비겁했고 무책임했으며 상처 주는 존재였음을 은유하는 부분이다. 암에 달라붙어 있는 은유들은 반감을 불러일으킨다.

사람들은 질병을 도덕적 타락, 신의 심판, 인류 종말의 의미로 사용하는 종교적 은유뿐만 아니라 숨은 본성을 드러내는 촉매로 표현한다. 사회적 부패의 은유로, 개인적 무력의 징표로, 전락이나 추방의 구제 수단으로, 죽음의 인지를 고양하는 수단으로, 삶에 침투하여 생을 파괴하는 이질적이고 불가능한 힘으로 비유하기도 한다. 특히 문학은 비유나 상징으로 질병을 원용하여 질병 현상을 문학화하거나 주제화한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는 발병 원인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원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 때문에 은유가 자연스럽게 생겨났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질병이 객관적 실체로 파악되기 시작했다고 해서 질병을 도덕적 타락이나 신이 내린 천벌의 은유로 사용하는 관계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질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인간과 바이러스의 투쟁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이미지를 낳으며, 질병을 악으로 규정하는 종교적 은유를 강화해 주는 결과를 빚기도 한다.

질병을 둘러싼 은유들은 환자를 고립시키거나 낙인을 찍으며 괴롭힌다. 우리나라 국민이 평균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4%이며, 남자(77세)는 5명 중 2명, 여자(84세)는 3명 중 1명에서 암이 발생한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연극 속 '연옥'일 수 있다.

우리는 질병 자체, 그리고 질병에 들러붙어 환자의 재활 의지를 꺾는 낙인, 은유, 이미지와 투쟁한다. 가장 건전한 방식으로 질병을 겪어내려면 질병을 은유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저항해야 한다. '암'이라는 명칭 자체가 질병을 처치하기 불가능한 악으로 간주하기에, 암에 걸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기를 잃을 수밖에 없다. 미국 소설가 수전 손택의 말처럼 질병은 그저 질병이며,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다.

질병은 삶이 건네준 성가신 선물이다. 연극의 주인공들은 질병을 통해 자신들이 거부당했던 기억을 재구성하고, 깨달음을 얻어 자아를 좀더 고양시켜 나가는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그래도 순간순간의 대사 중에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뭔가 추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은유의 함정 때문에 내내 불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가천대 외래교수, 간호사ㆍ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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