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마음 막고 아내를 위해 앉아서 소변을 보던 사람이 응가까지 해버린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앉아 쏴’가 훈련돼 있지 않은 남자는 누구나 힘을 주다가 본의 아니게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남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하지는 마시라. 이 글 1회에서 남자는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말한 것과 달리 중요한 일 두 가지를 훌륭하게 동시 처리했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아주 잠시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이제 동시처리 능력이 확인됐으니 뭔가 좀 냄새가 나지 않고 거룩하고 보람 있는 일을 한꺼번에 해내는 능력을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여자들은 절대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다. 나는 오줌 누다가 응가까지 했다는 여자를 본 적이 없다(물론 볼 수야 없지. 어떻게 보겠어? 말을 안 해줘서 내가 모르는 건가?). 개도 똥과 오줌을 따로 눈다. 똥 눌 때 오줌까지 함께 싸는 개는 본 적이 없다. 다만 못나고 서투른 남자들만이 두 가지를 ‘동시 개봉’하고 있는 셈이다.
‘앉아 쏴’를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많다. 2000년대 초 독일의 바이어 집에 초대받은 A씨는 화장실에서 아무 생각 없이 서서 오줌을 누다가 앉아서 소변보는 그림이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아차 싶어 주인에게 실수를 고백했는데, 설명을 들은 다음부터는 그게 맞다 싶어 철저하게 ‘앉아 쏴’를 실행하고 있다. 다만 술에 취했거나 너무 급한 경우에는 예외다. 이 세상에 예외가 없는 법칙은 없다.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온 B씨는 빽도 줄도 없어 여러 대학을 전전하고 있는 보따리 시간강사다. 그의 아내는 독일에서 좋은 직장을 얻어 눌러 앉았다. 그 바람에 B씨는 어쩔 수 없이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 가서는 앉아서 쏘고 국내에서는 서서 쏘고 하다 보니 영 헷갈려 죽겠다고 한다. 어떤 때는 거꾸로 국내에서 앉아 쏘고 독일 가서는 서서 쏘다가 혼나기도 한다.
이 두 사례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독일에서는 남녀 불문하고 어려서부터 ‘앉아 쏴’ 교육을 받는다. 무산자나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겨 있지만, 독일어에는 ‘Imsitzenpinkler(임지첸핀클러)’, 앉아서 소변보는 사람이라는 단어가 엄연히 있을 정도다. 국내 어떤 대학의 ‘독일의 언어와 문화’ 강의에서는 이런 시험 문제도 나왔다고 한다. ‘독일 남자들은 소변을 볼 때 ( ) 한다.’ 괄호 안에 써넣어야 할 정답은 ‘앉아서 본다고’다.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 앉아서 소변보는 남자들이 많은 데 대해 우리나라 남자들은 생물적 생래적 생태적 생리적 생활적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생산적인 거부반응은 결코 아니다. 이유인즉 “독일이나 일본의 화장실은 물청소 하기가 힘든 구조다. 우리와 달리 화장실 물청소를 엄두도 내지 못하니까 '앉아 쏴'를 하는 거다.” 숙제하기 싫어서 별별 핑계를 다 갖다 대며 반항하는 어린애 같다.
끝으로 ‘앉아 쏴’를 열심히 실천하게 된 사람의 사례 하나 더-. C씨의 집에는 그를 빼고 아내와 딸 셋, 강아지까지 온통 암컷 일색이다. C씨는 이 사랑하는 여성들을 생각해서 소변을 볼 때 반드시 변기 안장(이른바 변좌라고 하는 것)을 올리고 일을 보았다. 바닥이나 옷에 오줌이 덜 튀거나 묻게 하려고.
그런데 소변을 본 뒤 안장을 다시 내리는 걸 잊어버리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걸핏하면 아내와 딸들이 변기에 앉다가 철퍽, 풍덩 빠지곤 했다(아이고 엉덩이 아파라, 차가워라!) "거 좀 잘 보고 앉지, 눈 뜨고 뭐해?"하며 맞섰지만, 가족들의 거센 항의에 견디지 못한 C씨는 결국 익사사고를 막기 위해 변기 안장을 올리는 대신 스스로 바지를 까고 앉아서 소변을 보게 됐다. 이제 얼마 있다 사위가 생기면 그 녀석도 앉아서 소변을 보게 할 계획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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