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삼성중공업과 한진해운은 공동 연구협약을 맺었다. 국내 조선ㆍ해운업계를 대표하는 두 기업이 손을 잡은 건 선박 운항 중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도록 연비 향상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삼성중공업이 건조하는 한진해운의 컨테이너선을 친환경 선박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구상이다.
지금 조선업계엔 '에코십(eco-ship)' 개발 열풍이 거세다. 불황 타파의 돌파구이자 미래 성장동력으로서도 친환경 선박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다.
에코십이 미래형 선박으로 급부상한 이유는 고유가 및 강화된 환경규제에 있다. 우선 2~3년 전부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운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연료효율을 최대한 높일 필요가 생겼다.
연비의 중요성은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의 사례에서 입증됐다. 조선경기가 좋았던 2007~2008년만 해도 머스크와 국내 해운사들의 수익성 차이는 크지 않았다. 유가의 영향이 적었던 탓에 벌크선 등 선가가 낮은 상선을 대량 발주해 저연비로 인한 손실을 메우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이후 고유가가 상선 시황을 좌지우지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머스크의 작년 3분기 컨테이너선 부문 영업이익은 전 분기보다 무려 106.4%나 늘어난 반면, 현대상선은 겨우 적자를 면한 수준이었다. 박무현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에코십이 고유가 시대에 최적화한 선박임을 깨닫고 10년 전부터 집중 투자한 머스크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국제해사기구(IMO)가 올해부터 선박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를 확대한 것도 선주사들이 에코십으로 눈을 돌리게 한 요인으로 꼽힌다. 앞으로 온실가스 감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배는 최악의 경우 입항을 거부당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선박해체 규모는 사상 최대인 5,800만DWT(재화중량톤수)를 기록했다"며 "경기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기왕이면 지금처럼 가격이 바닥을 쳤을 때 배를 교체해 환경기준에 대비하려는 해운업계의 심리도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해운사들의 에코십 발주 확대는 국내 조선업계의 선박엔진 개발 판도를 바꿔 놓고 있다. 현대미포조선은 작년 5만톤 급 석유화학제품운반(PC)선을 스콜피오탱커사에 건조ㆍ인도했는데, 기존 선박보다 연료소모량을 무려 30%나 감축해 해운사의 극찬을 받았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세계 최초로 G타입(Green Type) 고효율ㆍ친환경 선박엔진 제작에 성공했다. 세계 11개 선급기관의 형식 승인까지 마친 이 엔진을 컨테이너선에 탑재할 경우 연비를 최대 7% 높여 연간 32억원을 절약할 수 있다. 삼성중공업은 아예 2010년 이후 수주한 60여척의 선박들에 대해 설계 단계부터 연료소모량을 최소화하는 선형 모델을 적용 중이다.
두산엔진도 이중연료저속엔진을 미국 선사가 발주한 컨테이너선 5척에 순차적으로 공급할 예정이고, 2009년부터 에코십 프로젝트를 가동 중인 STX조선해양은 친환경 연료를 사용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5%나 줄였다.
황보승면 삼성중공업 전무는 "이미 선박 연비관리에 관한 기술자립도는 탁월한 수준"이라며 "실제 선박에 관리시스템을 적용, 에코십의 효과를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조선업계의 불황을 극복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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