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차 고교 교사 김모(36)씨는 '4ㆍ1 부동산대책'을 누구보다 유심히 들여다봤다. 연 소득 3,500만원에 예금도 3,000만원 있고, 자기 집을 가져본 적이 없는 터라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게 안겨질 취득세 감면, 금리 인하, 금융규제 완화 등 각종 혜택에 솔깃했다. 그러나 "당장 먹고 살 돈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난달 아기를 낳은 후 월급만으론 생활비도 빠듯해요. 전세자금대출도 2,500만원(20평대 단독주택)이나 남았고. 아기 방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참에 집을 사볼까 하고 4ㆍ1 대책을 자세히 살펴봤는데, 결국 지금 있는 빚에다 빚을 더 얹어내라는 거네요. 아기 때문에 앞으로 저축도 못할 것 같은데."
그는 주변 반응도 비슷하다고 했다. "6억원짜리 아파트를 빚 내서 사는 건 바보라고들 해요. 앞으로 집값이 오른다는 보장도 없잖아요. 근데 자꾸 빚을 내라니 '젊은 사람들이 돈이 어디 있느냐'고 푸념하죠. 3, 4년 전 집을 샀다가 처치 곤란을 겪는 동료들을 봐도 집을 살 엄두가 안 나네요."
주부 이모(33)씨 역시 정부의 부동산대책 발표 후 남편과 장시간 얘기를 나눴으나 결국 집을 사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냈다. 서울 광진구의 전세보증금 1억원, 월세 20만원짜리 빌라에 사는 이씨 부부는 연 소득이 4,300만원이다. "변두리 지역의 25평 집을 사려해도 최소 3억원이 필요하니 2억원을 빌려야 하는데, 대출금리 3.5%만 잡아도 1년에 700만원, 월 60만원 가까이 나간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혀요." 부모님께 손을 벌릴까도 생각했지만 부담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정부가 파격 '3종 세트'를 제시해 4ㆍ1 대책의 최대 수혜자로 떠오른 20, 30대 무주택 가구들이 고민에 빠졌다. 귀가 솔깃한 제안이지만, 주판알을 아무리 튕겨봐도 집을 살 여력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소득은 줄고 지출은 늘어나는데 빚을 또 내 집을 사라고 부추기니 되레 상실감만 커진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경제 전반이 살아야 부동산시장도 살아날 텐데, 거꾸로 가고 있으니 "경제부터 살리라"는 것이다. 자칫 정부 정책에 부응했다가 하우스푸어로 전락하는 거 아니냐는 불안과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가구들만 집을 사는 자산양극화 심화도 우려된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 30대 임금근로자는 전체 가계부채의 30% 가까이를 떠안고 있다. 임금근로자의 가구당 부채는 4,600만원,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26%다. 전체 부채보유 가구의 대출연체 원인은 소득 감소(34.3%), 생활비 증가(23.8%), 원리금 상환규모 부담(21%) 등의 순이었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소득은 적고 결혼과 출산에 따른 지출은 많아 이미 다른 빚을 지고 있는 20, 30대의 부담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주택 수요가 갑자기 늘어나는 30~34세를 가리키는 '점프세대'의 자가(自家) 점유 비중은 2000년대 중반까지 30%대를 웃돌다가 2010년을 기점으로 10년 전(1990년 29.1%) 수준으로 돌아갔다. 소득이 정체한 가운데 일자리는 불안해 전ㆍ월세로 눌러앉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내 집 마련을 실현할 가능성이 없다'는 무주택자 비중은 2011년 29.8%에서 2012년 33%로 3%포인트 이상 늘었다.
전문가들 역시 20, 30대 무주택자는 집 살 여력이 없다고 단언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주택 구매는 생애 가장 큰 쇼핑이라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이 담보가 돼야 가능한데 2%대 성장률로는 어림없다"고 했다. 그는 "더구나 젊은 세대는 이미 전세대란 때문에 대출을 많이 한 렌트푸어들"이라며 "또 빚을 늘려서 하우스푸어를 만드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만하다"고 덧붙였다.
수요자보다 공급자 입장을 우선하는 정부 정책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통해 "실수요자들은 소득에 비해 집값이 여전히 비싸고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정부는 '금융지원을 할 테니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식의 부동산정책을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주통합당 역시 "생애최초 주택구입자에 대한 금융규제 완화가 이들을 또다시 하우스푸어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고 반대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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