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국가정보원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정원이 최근 몇 년간 본연의 임무는 소홀히 한 채 지나치게 정치화되면서 심각한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국정원 안팎에서는 남재준 신임 국정원장이 무너진 대북 휴민트(HUMINTㆍ인적 정보) 라인을 복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조직ㆍ인사 쇄신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대북 정보 라인이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완전히 붕괴했다는 지적에 박 대통령은 물론 남 원장과 국정원 내부가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조직 감찰 및 내부직원 징계 등을 총괄하는 감찰실장 자리에 외부 인사인 현직 부장급 검사를 영입하기로 한 것(본보 2일자 1면)은 그런 측면에서 조직 개혁과 인적 쇄신의 서막으로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 2009년 임명돼 올해 초까지 장기 집권했던 원세훈 전 원장 재임 시절 국정원은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원 전 원장 부임 직후 남북 비공개접촉과 교류협력을 업무로 하는 대북전략국이 해체되는 등 대북 업무는 홀대를 받았다. 2011년 12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사실을 52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것도 북한의 TV 발표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인정한 국정원은 무기력을 넘어 무능에 대한 질타를 피할 수 없었다. 그 해 5월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을 당시 후계자였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단독 방중으로 발표한 것도 대북정보 분야의 무능을 드러낸 사례였다. 지난해 12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제때 감지하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의 대공 기능은 개점휴업 상태"라고 털어놓을 정도다.
거꾸로 국정원은 국내정치 문제에 대한 과도한 개입으로 거센 비판을 자초했다. 지난해 12월 대선 때는 국정원 여직원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댓글을 달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극에 달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원 전 원장이 각종 정치ㆍ사회 현안에 국정원이 적극 개입할 것을 주문한 '원장님 지시ㆍ강조 말씀' 문건이 공개되면서 위상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더구나 두 사건이 모두 국정원 내부고발자에 의한 사실상 폭로였다는 점에서 보안을 생명으로 하는 국정원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은 어설픈 업무 수행으로 국제적 망신까지 자초했다. 2011년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머물고 있던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 침입해 노트북을 뒤지다 발각되자 도주한 사건은 물론, 2010년 방한한 프랑크 라 뤼 유엔 특별보고관을 몰래 촬영하다 발각되기도 했다. 국정원 내에서조차 "흥신소 직원도 그 정도는 하겠다"는 비아냥과 자조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 같은 비판과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는 남재준 원장 체제의 국정원은 우선 대북ㆍ대외 정보 수집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바로세우기 위한 조직 진단부터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 진단_ 개혁안 마련_ 인사_ 개혁 추진'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전직 국정원 관계자는 "의외로 아직까지 인사 얘기는 조용하다. 하지만 외부 인사 감찰실장 기용 등 국정원을 본래 기능에 충실하도록 개혁하는 작업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고 진단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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