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할 때까지만 남아줘”, “이안(레오 아들) 잘 크게 하고 운동에만 전념하게 해줄게”, “대청봉 몇 번만 갔다 오면 ‘철인’이 될 수 있어.”
신치용(58) 삼성화재 감독이 ‘양아들’ 레오(23)에게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제안한다. 그러자 레오도 “내치지만 않는다면 삼성화재의 역사를 계속해서 이어가겠다”라고 굳게 약속했다.
레오와 신 감독은 7개월 만에 가장 신뢰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올 시즌 누가 누구의 덕을 봤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자 신 감독이 먼저 레오를 번쩍 안아 들어올렸다. 레오 역시 곧바로 ‘스승’을 들어올렸지만 신 감독(97㎏)이 자신보다 무거웠던 탓인지 휘청거렸다. 둘은 서로를 바라보고 활짝 웃었다. 1일 용인 삼성휴먼세터에서 만난 레오와 신 감독은 허물없이 친근해 보였다.
‘마른 장작’과 ‘호랑이 선생님’의 ‘일촉즉발’
삼성화재는 리그 6연패를 이끈 레오와 내년에도 함께 간다. 신 감독은 “임대 연장과 완전 이적을 놓고 원 소속팀 파켈과 협상하고 있다. 본인도 3~4년간 한국에서 더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라고 털어 놓았다. 배구 팬들은 다음 시즌에도 레오의 활약상을 볼 수 있게 됐다.
지금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분신’ 같은 존재지만 사실은 ‘상극’에서부터 출발했다. 레오는 입단 테스트를 받았을 당시 몸무게가 76㎏에 불과했다. 206㎝의 큰 키에 비해 깡마른 체형이었다. ‘작대기’ 같은 모습 탓에 신 감독도 성공 여부에 대해 반신반의했다.
그러다 체력 훈련 도중 둘은 부딪혔다. 신 감독은 “피지컬 트레이닝 이후 운동장을 도는 훈련을 하는데 레오가 4바퀴쯤 뛰다가 갑자기 주저 앉아버렸다. 더 이상 못 하겠다고 씩씩거려 운동장에 서서 둘이 30분간 대치했다”고 말했다. 누구도 열외를 인정하지 않는 신 감독에게 대항하며 훈련을 거부해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몰린 것이다.
결국 신 감독은 윽박지르고 달래기를 반복하며 운동장을 돌게 만들었다. 레오는 “솔직히 지금 와서 이야기지만 감독님에게 가장 서운했던 게 그때였다. 운동장을 돌 때 정말 힘들었다. 나 자신이 제어가 안 될 정도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레오에게 신 감독은 그야말로 ‘호랑이 선생님’이었던 셈이다.
레오는 “이후로 감독님의 시선을 피했다. 정말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신 감독은 “용병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한 번만 웃어달라’는 소리다. 그렇지만 레오, 난 부드러운 남자야”라며 껄껄 웃었다.
7개월 만에 ‘양아들’,‘삼성 맨’ 약속
76㎏이었던 레오는 89㎏까지 몸을 키웠다. 삼성화재의 체계적인 체력 훈련 시스템 덕분에 레오는 근육질 몸매가 됐다. 체중이 불어나니 약점으로 지적된 파워도 좋아졌다.
결국 레오는 높이와 파워를 겸비한 선수로 성장하며 삼성화재의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레오는 “워낙 시스템이 잘 돼있기 때문에 그냥 하라는 대로 하다 보니 몸이 좋아졌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신 감독은 “대청봉에 몇 번만 더 갔다 오면 ‘철인’이 될 수 있다”고 슬며시 눙쳤다. 화들짝 놀란 레오는 말없이 미소만 머금었다.
올 시즌에 앞서 삼성화재는 설악산 전지훈련을 통해 체력을 끌어올렸다. 레오도 대청봉 산행 훈련에 빠짐없이 동참했다. 신 감독은 “하체가 긴 레오로선 올라가는 건 몰라도 내려오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비록 선수 중 가장 마지막으로 들어왔지만 5시간 만에 완주했다”고 대견해 했다. 레오도 “산행 훈련 전에는 과연 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완주 후에는 더 없이 큰 성취감을 느꼈다”라고 활짝 웃었다.
이제 레오는 신 감독이 짠 훈련 프로그램이라면 군말 없이 소화한다. 자신의 발전을 위한 훈련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신 감독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레오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레오는 ‘삼성화’ 됐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레오는 그렇게 한국에 온 지 7개월 만에 신 감독의 ‘양아들’이자 ‘삼성 맨’이 됐다.
레오 배구학교에 ‘삼성화재 시스템’ 도입
레오는 이제 스물세 살이다. 하지만 ‘애늙이’로 불린다. 레오가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도 ‘애늙이 같다’는 말이란다.
그는 “가장으로서 책임감과 경기력에 대한 부담감이 이렇게 만들었다”며 “또래들은 학업에 집중하고 있을 때이지만 가정이 있기 때문에 23세의 나이에만 머물 수 없다. 나 또한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양아들’의 속 깊은 이야기에 신 감독은 ‘최고’를 연발하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이어 그는 “레오를 처음 봤을 때부터 내공이 있다고 생각했다. 23세지만 경험 없는 선수가 아니었고, 배구 이해도가 높았기 때문에 선택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레오는 미래의 청사진에도 ‘삼성’을 포함시켰다. 9세 때부터 쿠바의 배구학교에서 프로 선수?꿈꿨던 레오는 “쿠바에 배구 아카데미를 세워 영재들을 양성하고 싶다”고 밝혔다. 곰곰이 듣고 있던 신 감독은 무릎을 치며 “그럼 선수를 키워서 한국으로 보내라”고 제안했다. 그러자 레오는 “아카데미 코스에 혹독한 산행 훈련도 포함시키는 등 삼성의 시스템을 적용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젠 누구보다도 ‘쿵짝’이 잘 맞았다.
용인=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