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및 지역 가입자 여부에 따라 서로 다른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단일화방안을 놓고 오래된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2000년 6월 직장과 지역건강보험조합이 통합하면서 조직과 재정은 합쳐졌으나, 부과체계는 ‘따로 국밥’ 형태를 여지껏 유지하고있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에, 지역가입자는 소득ㆍ재산ㆍ자동차에 건보료를 매기는 별개의 부과체계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유리알 지갑’의 직장가입자나, 피부양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가입자들 모두 건보료 부과의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단일부과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했지만, 낮은 소득파악률에다가 기존 가입자들의 저항 등에 밀려 부과체계 개선은 제자리 걸음이다. 부과체계 개선의 당위성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방법과 속도에 대해선 전문가 시각은 엇갈린다.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정권초기에 소득중심 단일부과체계 개편을 서두르고 간접세에 건강보험료를 부과해 건보 재정을 충당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김진수 연세대 교수는 “소득기준 보험료 부과에 찬성하지만, 충격과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하게 개혁해야하고, 소득 역진적인 간접세 방식의 건보료 부과는 안 된다”고 말했다.
“급격한 제도 개혁은 혼란만 부를 것… 재정측면서도 보험료수입 급감 직면”
●반대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공식적 소득 없는 거액재산가한 푼 안내는 상황 벌어질 수도간접세방식 재정충당 단견 불과
우리 건강보험은 국제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거리감이 있다. 건강보험료는 계속 증가하는 데 의료비 부담은 힘겨워지는 상황 때문이다. 우리나라 건보료는 최근 5년간 약 40% 정도 인상되었다. 반면에 보장률은 2011년 현재 63%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약 80%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또한 고령화, 비급여의 급격한 증가 등으로 건보료 부담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 상황에서 건보료 부과체제의 합리성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현행 건보료는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직장가입자의 가족은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부양가족으로 편입되면 보험료를 부담하지 않고, 자식이 없는 지역가입자 노인은 소득이나 재산이 적어도 보험료를 납부해야 한다. 실직 전보다 후에 보험료 부담이 더 높아지는가 하면, 지역가입자는 재산이 많을수록 상대적으로 보험료율이 낮다. 이렇게 모순되는 상황이 건보료 체계의 현 주소이다.
건보료는 대부분 국가가 소득에 부과한다. 부담 능력에 따른 형평성을 잘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를 소득 외에 재산이나 자동차 그리고 가족 규모에 따라 부담하는 예외적인 방식이다. 그렇다고 현 방식을 단순히 비판만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은 건강보험의 도입 및 확대 시기에 소득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 노인은 극소수 일부 계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득이 없었고, 자영업자의 경우도 소득 파악이 상당부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득에 대해서만 보험료를 부과하게 되면 근로자 계층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했다. 오히려 그 당시 지역조합이 부담능력을 가름할 수 있는 재산이나 자동차를 보험료 부담 기준에 포함한 것은 제도 도입을 위해서 불가피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현 시점에서 소득에만 부과하는 체제는 가능한 것일까? 물론 지금 당장 가능하다면 지체없이 도입하면 된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만일 보험료 부과 체계를 지금 바로 소득 기준으로 바꾼다면 상당한 변화와 충격을 감당하여야 한다. 먼저 형평성 측면에서 볼 때 현재도 계속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많은 재산소유자는 오히려 보험료 부담에서 완전히 제외된다. 그동안은 직장가입자의 부양가족만 건보료 부담에서 제외되었지만, 개혁이 되면 지역가입자가 호화주택이나 외제 자가용 소유를 하더라도 공식적인 소득만 없으면 보험료를 한 푼도 안내도 된다. 직장가입자 자녀를 둔 높은 재산가에게 그나마 보험료를 부담시켜 온 현 제도는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재정적 측면에서 볼 때 지역가입자가 재산에 따라 부담하는 지역보험료의 절반 가량이 갑자기 사라지게 된다. 즉, 엄청난 보험료 수입이 급감하게 된다. 엄청난 보험료 수입 감소를 다른 가입자에게 전가한다면 가입자의 반발로 건강보험은 존폐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물론 다른 재원조달 방안으로 담배, 술에 부담을 지울 수도 있으나 규모가 너무 작다. 소비세 형태의 간접세 방식은 직접적인 부담 계층이 명확치 않기 때문에 수월해 보일 수 있지만, 이 방식은 소위 사회보장을 추진하면서 역진적인 방식으로 재정을 충당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 결국 급격한 개혁은 혼란을 야기 시키면서도 실제 내용은 밑돌 꺼내 윗돌 올리기가 될 수 있다.
다행히 소득 기준 보험료 부과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국민연금 수급자 증가이다. 비록 평균 연금액이 월 30만원 수준이라 건보료를 부과하기에는 너무 낮은 수준이지만 연금액이 정상화되면 선진국처럼 연금액에 건보료를 부과할 수 있다. 또한 모든 가입자의 종합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부과할 수준으로 소득 파악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저소득 계층이나 일부 자영자는 아직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상황이 형성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에 맞추어 단계적으로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체제로 전환한다면 충격과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그리고 새로운 조세 체제를 도입하는 어려움을 겪지 않고 합리적인 보험료 체제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사회보험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사회 안정이다. 제도 개혁이 사회적 충격을 잘 흡수하며 진행될 수 있도록 신중함이 필요한 때이다.
“현행방식 모순범벅에 민원·불만 폭주… 새정부 초기 부과체계 개편 서둘러야”
●찬성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퇴직 후 보험료 인상 타당한가베이비부머 은퇴 땐 대란 예고술·담배 등 부과재원 다양화 필요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방식은 참으로 모순된 점이 많다. 좋은 직장을 다니다 퇴직하여 매월 300만원 이상의 연금을 수령하면서, 많은 재산에 좋은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퇴직자는 직장을 다니는 자녀만 있으면 직장피부양자로 들어가서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반면,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노인들은 자식이 자영업을 할 경우 농사짓는 소득, 재산, 자동차 심지어 가구원수에 따라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야 한다. 있는 사람은 내지 않아도 되고, 없는 사람은 더 내야하는 기막힌 상황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실직이나 퇴직으로 소득이 상실되었음에도 집이나 자동차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험료가 더 높아지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외에도 고소득 수입의 연예인‧직업운동선수 등이 고액의 지역보험료 부담을 회피하려 직장가입자로 허위 취득하는 경우나, 같은 직장 내에서도 근로소득 이외에 금융소득 등 기타의 소득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보험료가 똑같아 불형평성에 관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이러한 모순된 보험료 부과체계의 근본원인은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부과기준이 서로 상이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소득에 단일하게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지 않는 것 역시 큰 문제점이다. 다시 말해 직장가입자에게는 근로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고, 일정수준의 소득이 있어도 직장피부양자가 될 수 있어 보험료를 한 푼도 내지 않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지역가입자의 경우는 소득 자료가 미비하다는 이유로 소득 이외에 재산, 자동차, 성‧연령(가구원수)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해 발생하는 민원은 연간 약 6,300만건으로 전체 건강보험 민원 중 80%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700만 명이 넘는 베이비부머들이 퇴직하기 시작하는 시기가 이미 눈앞에 도래했다. 머잖아 이러한 민원은 폭증할 것이며, 그 불만은 한계상황에 다다를 것으로 보인다.
이와같이 잘못된 보험료 부과체계의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소득을 중심으로 한 단일보험료 부과체계를 도입하는 것이다. 즉 발생한 모든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고, 재산, 자동차 등 불합리한 요소에는 보험료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직장, 지역 가입자의 종합소득에 대해 보험료를 부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연금소득, 4,000만원 이하 금융소득, 양도소득 등 소득의 종류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보험 재정을 추가로 충당하는 방안으로,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담배와 술 등 건강위해 행위에 대한 보험료 부과 확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험료 인상이나 국고지원 확대 없이 부과재원을 다양화 하여 보험재정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는 것은 비단 프랑스나 벨기에 등 국가뿐만 우리 현실에도 매우 부합한다.
새 정부는 국정과제로 의료 보장성 강화 및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소득중심의 부과체계로 단계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보험료부과체계 틀 내에서의 단계적 접근은 또 다른 불만계층을 양산할 뿐이다. 새 정부 초기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되어 조기에 확립하지 못한다면 목표지점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모든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겠다는 것은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탈루된 세금 등 지하경제 활성화라는 새 정부 방침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소득기준 단일보험료 부과체계가 2000년 건강보험이 통합되었을 당시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비중이 42.88%로 보험료 변동에 따른 수용성이 낮았지만, 의사 등 고소득 渙??등과 5인 미만 사이 직장가입자로 편입되면서 2011년에는 그 비중이 20.60%로 크게 낮아져 보험료 변동에 따른 민원이 최소화 될 수 있어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최근 우리나라 건강보험을 많은 나라들이 부러워하고, 우리나라 제도를 모델로 삼으려는 나라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건보료 부과체계 만큼은 매우 공정하지 못하며, 후진적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분노어린 민원을 최소화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는 소득기준 단일보험료 부과체계가 절실한 시점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