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편성 오케스트라가 '현역' 작곡가 한 사람의 작품으로만 자체 기획 공연을 한다? 한국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작은 앙상블이나 개인 연주회에서도 드문 일이다. 살아있는 작곡가의 음악을 일상적으로 연주하는 유럽이나 미국의 풍경은 딴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작곡가 류재준(43)은 이 전례 없는 사건의 주인공이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경기필)가 6일 경기도문화의전당 대극장에서 '류재준의 밤'을 연다. 경기필 예술감독 구자범(43)의 지휘로 '장미의 이름' 서곡과 '진혼교향곡', 바이올린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한국 작곡가를 집중 조명하려는 취지로 마련한 공연이다. 작곡가로부터 어떤 금전적 대가를 받고 하는 연주가 아니다. 오히려 작곡가에게 악보 사용에 따른 저작권료를 지급한다.
지휘자 구자범과 작곡가 류재준은 지난해 12월 초 처음 만났다.
"혹시나 하고 악보를 보냈더니 바로 만나자고 하더라. 뜻밖이었다. 한국 오케스트라가 한국 작곡가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 잘 아니까. 악보를 보내도 대부분 그냥 씹는다. 며칠 뒤 다시 연락이 왔다. 내 곡으로 연주회를 하고 싶다고. 엄청난 열정과 실력을 지닌 지휘자다. 내 곡을 나보다 더 잘 안다. 이처럼 지독하게 완벽을 추구하는 지휘자는 처음 본다.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들려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사람과 일을 하다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복을 만난 기분이다."
류재준은 폴란드 출신 대작곡가 펜데레츠키가 자신의 후계자로 선언한 작곡가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외국에서 더 자주 연주된다. 대표작을 모은 이번 공연 프로그램 중 바이올린협주곡 1번은 2006년 폴란드 라보라토리움 현대음악제 위촉으로 발표한 이래 유럽에서 30회 가량, 미국에서는 마이클 틸슨 토머스의 지휘로 막심 벤게로프와 디트로이트 심포니가 연주했다. 그의 교향곡 1번인 '진혼교향곡'은 2개의 합창단과 100명의 오케스트라 등 연주자가 250명 필요한 대작. 2008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베토벤 음악제에서 세계 초연 당시 기립 박수를 받았고,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장미의 이름'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2015년 발표할 오페라. 2010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에서 위촉을 받고 일단 서곡부터 썼다. 이 서곡은 수원시향과 핀란드 헬싱키필하모닉 등이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오페라 '장미의 이름'을 거의 다 썼다. 이 작품도 구자범의 지휘로 세계 초연하고 싶다. 제안했더니 흔쾌히 반기더라. 외국에서 하게 될 것 같다."
그는 작곡가는 시대의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시대를 투영하는 작품이 아니면 쓸 게 없다. 인간의 고해? 사랑 타령? 그 따위는 내다 버리라고 하고 싶다. 그럴 바엔 용산참사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곡을 쓰겠다. 용산 그 자리가 지금은 거대한 놀자판 포장마차촌이 됐다. 이게 말이 되나."
이번 공연에서 연주하는 '진혼교향곡'은 오늘의 한국을 일군 세대에게 바치는 작품이다. 2010년작 첼로협주곡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에 대한 음악적 항변이다.
"폴란드 유학 시절인 1994년 국경없는의사회를 따라 자원봉사자로 러시아 체첸에 간 적이 있다. 거기서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다. 바로 옆에서 무참히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이들에게 음악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이제는 대답할 수 있다. 음악은 위로이고 정화이다. 내 음악이 그런 것이 되길 바란다."
작곡가 류재준과 이번 공연 지휘자 구자범은 동갑내기다. 두 사람 모두, 가던 길을 갑자기 바꿔서 음악을 택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음악계 풍토에는 좀 별난 존재이기도 하다.
류재준은 고 3 때 작곡가가 될 결심을 했다. 그 전까지 음악을 배우거나 악기를 해본 적이 없다. 서울대 음대 작곡과에서 강석희 교수에게 배우고, 1992년 폴란드 크라코프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나 펜데레츠키를 사사했다. 현재 그는 강의나 부업 없이 작곡만으로 먹고 사는 전업 작곡가다.
구자범은 철학도 출신이다. 연세대 대학원 철학과를 다니다가 25세에 독일로 음악 유학을 떠나 지휘자가 됐다. 하노버 국립오페라극장 수석 지휘자로 있다가 돌아와 2009, 2010년 광주시향을 거쳐 2011년부터 경기필을 맡고 있다. 광주시향 시절 참신한 기획과 뛰어난 연주로 '구자범 바이러스', '구마에'라는 말이 생길 만큼 돌풍을 일으켰다. 현재 경기필은 그의 지휘봉 아래 일취월장을 거듭하며 음악계 화제의 초점이 되고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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