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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 사리 47년만에 다시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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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탑 사리 47년만에 다시 햇빛

입력
2013.04.0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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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개석 해체를 시작하겠습니다. 들어올려 주세요."

2일 오후 2시 경북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해체 현장. 국립문화재연구소 배병선 경주석조문화재보수정비사업단장의 호령에 따라 10톤 무게를 감당하는 기중기가 천천히 밧줄을 감아올리기 시작했다. 가로 세로 2.35m 무게 6.48톤의 거대한 정방형 돌덩이가 소리도 없이 허공에 떠올랐다. 10여m 석가탑의 거의 한가운데 높이에 해당하는 2층 옥개석(屋蓋石ㆍ지붕돌)이 1966년 이후 47년만에 처음 수리를 위해 해체된 것이다.

2010년 말 석가탑 기단부 윗돌에 균열을 발견한 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전면 해체 보수 작업 과정에서도 이날 작업이 눈길을 끄는 이유가 있다. 도굴 피해를 당한 뒤 66년 수리를 위해 2층 지붕돌을 들어내자 그 아래 탑신(塔身ㆍ몸돌) 한가운데 가로세로 41㎝ 깊이 19㎝의 사리공(舍利孔)에서 보물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사리를 이중 삼중으로 담은 금동ㆍ은 소재 함들과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이때 발견한 것이다. 석가탑 자체가 국보이지만 당시 석가탑 안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따로 26점이 한꺼번에 국보로 지정됐다.

이때 유물 진품은 대부분 외부에 보존하고 석가탑 안에는 원래 사리를 복제품에 담아 넣었다. 하지만 그 중 사리 1과씩이 들어 있던 은으로 만든 작은 호리병과 나무 곽은 진품이 그대로 다시 들어갔다. 석가탑으로 되돌아가는 바람에 문화재 지정에서는 제외됐지만 보물 이상은 되었을 유물들이다. 이날은 1,300년 이상 석가탑에 안치됐던 사리와 이 보물급 사리 보관함들이 다시 햇빛을 보는 날이었다.

그런데 석가탑 사리에는 작은 미스터리가 있다. 사리 발견 당시 유물과 함께 석가탑의 수리 내력을 담은 중수(重修)문서도 나왔다. 여기에 담긴 1038년(고려 광종 3년) 중수 기록에는 유리병에 사리 47과를 담았다고만 돼 있는데 66년 수리 과정에서는 유리병에 담은 46과와 호리병, 나무곽에 각각 1과씩 모두 48점을 수습했다. 배 단장은 "중수문서로는 남아 있지 않은 고려 이후 다른 해체 수리 작업이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사다마라고 46과의 사리를 담았던 청록색 유리병은 당시 한 스님의 부주의로 산산조각 난 일도 있었다.

66년 수리 당시에는 2층 지붕돌까지만 들어내 유물을 거두고 다시 탑을 원상복구시켜버렸다. 옥개석이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해체를 중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1층 지붕돌과 탑 받침까지 완전히 해체한다. 6월까지 완료할 탑 해체 과정에서 과연 어떤 유물을 발견할 수 있을지 벌써 가슴 두근거리는 사람이 적지 않은 이유다.

해체한 탑의 부재들은 먼지와 곰팡이 등을 제거하는 세척작업과 균열 접합 등 보수 작업을 거친다. 탑 무게를 견디지 못해 생긴 균열은 돌 안에 철근을 박아 다시 붙인다. 이밖에도 석가탑 꼭대기 장식물인 상륜부를 봉암사 삼층석탑이나 실상사 삼층석탑을 참고해 복원하는 것도 과제다. 배 단장은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지반을 보충한 뒤 내년 3월께 재조립에 들어가 6월 무렵에는 복원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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