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환갑잔치를 앞두고 고향집은 갑자기 북적댄다. 극단 작은신화의 '콜라 소녀'는 모처럼의 그 흥청댐 속에 감춰진 욕망의 모습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낸다. 어서 땅뙈기를 처분해서 각자 사업 자금으로 끌어 쓰려는 두 동생과 재산을 지키려는 형의 갈등이 연극의 줄기다. 무대는 그러나 삶의 천연덕스런 일상성에 무게를 둔다.
일견 두서 없어 보이는 등장 인물들의 대사는 정교하게 배치돼 일상 풍경 속으로 자연스럽게 용해된다. 배우들의 언행이 조금의 빈틈도 없이 맞물려 연출해 내는 소란은 곧 집중력이고 앙상블의 힘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제사를 준비하며 지지미 부치는 냄새가 밀려들어오면서 무대는 공감각적으로 객석을 유혹한다.
분주한 풍경과 겉도는 단 하나의 인물인 할머니는 치매다. 갑자기 집이 북적대는 것도 아랑곳 않고 자기만의 환상에 묻혀 산다. 혼잣말을 하거나, 멀쩡한 듯 대화를 나누거나, 늘어지게 하품을 하거나 할머니는 재산 다툼을 벌이고 있는 자식들과는 전혀 유리된 세계에서 산다. 종반 무렵부터 무대에는 큰 나비의 동영상이 극장 안을 떠돈다. 할머니는 그 환영을 좇아 결국 무대 바깥으로 나간다.
무대는 리얼리즘의 미덕을 견지한다. 형제가 모처럼 모여 도시락 싸 들고 나선 성묘길, 억새밭 속에서 식사하는 모습은 특히 공들인 장면이다. 실제 억새 세트가 암전 중 재빨리 배치된다. 거기서도 형제들은 날 선 말을 주고 받다, 거의 드잡이 직전이다. 단 둘만 남게된 할머니와 손녀가 끌어안는 장면에는 생의 쓸쓸함만이 가득하다.
이 대목에서 작가 김숙종은 비수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할머니가 공교롭게도 정신이 돌아온 그 순간, 아들들이 막장 싸움을 벌인 것. 할머니의 선택은 모른 척 하고 있다 사라져 주는 것뿐이었다. 손녀와의 포옹, 나비를 따라가는 장면 등이 그토록 처연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코끝을 찡하게 해서 눈물마저 찔끔 흘리게 하는, 콜라 같은 소녀다.
지난해 서울연극제에서 초연된 뒤 다듬어 다시 공연되고 있는, 발전중인 무대다. "무엇보다 배우들이 또 (공연)하고 싶어해요. (객석의)반응 좋다면 그럴 겁니다." 연출자 최용훈씨의 다짐. 14일까지 학전블루소극장.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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