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간지 2013 봄호가 일을 냈다. 판매호조에 힘입어 1994년 겨울 나온 창간호 이후 처음으로 재쇄(再刷)를 발행한 것. 2월말 책이 나온 후 약 한 달 만에 4,000여부가 매진돼 500부를 추가로 찍었다. 계간지의 마지막 중흥기였던 1990년대 초ㆍ중반까지만 해도 화제의 글이 실린 계간지가 재쇄 발행되는 일이 없지는 않았지만, 계간지의 무참한 쇠퇴일로를 감안하면 가히 돌풍이라 부를 만하다. 재쇄 발행은 국내 문예계간지를 대표하는 에서도 한번도 없던 일이며,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문예ㆍ사회비평지 에서도 1990년대 중반 이후 벌어지지 않았던 '사건'이다.
염현숙 문학동네 편집국장은 "간혹 자료 보관용으로 재쇄를 찍은 일은 있지만, 판매 목적으로 계간지를 추가 발행한 것은 1994년 창간호에 이어 두 번째"라며 "늘 재고를 안고 가야 하는 계간지가 재쇄를 찍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화제의 작가들이 신작을 대거 선보이고, 화려한 필진들이 포진한 기획 특집들을 여럿 선보인 것이 올 봄호가 창간호에 버금가는 관심을 받는 비결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봄호 돌풍'의 일등공신으로는 역시 소설가 신경숙씨가 꼽힌다. 그가 잇단 장편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신작 중편 소설 이 봄호에 실리면서 이미 문단 안팎의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로 숨가쁘게 장편을 이어온 신씨가 그 8년간 틈틈이 썼던 단편들을 묶어 펴낸 게 2011년 발행된 . 이후 국제적 작가로 입지를 다진 '신경숙의 힘'을 보여줄 신작 소설이 없었으니 그의 신작에 대한 기대가 매우 높았다. 작가 자신도 "2011년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오래 쉬었던 단편부터 꼭 쓰고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했는데, 그게 잘 안 되다가 비로소 쓴 작품이 '봉인된 시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 발표된 '봉인된 시간'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최측근이었던 육군현역장교와 시인인 그의 아내가 고국으로부터 버림받은 30여년의 세월을 다룬 중편소설이다. UN한국본부에 외교관으로 파견 나간 남편과 함께 뉴욕으로 떠나온 '나'가 10ㆍ26이 터지면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게 된 기구한 사연과 이들 가족의 신산한 삶이 일인칭의 서간체 형식으로 담담하면서도 기품 있게 그려졌다.
오늘날 한국 소설의 최우량주로 꼽히는 김애란과 편혜영이 나란히 장편연재를 시작한 것도 이번 '봄호 이변'의 한 원인으로 꼽힌다. '아버지 서사'에 특장을 보이는 김애란 작가는 아버지의 자살 후 머리 위에서 달이 깨지는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으로, 편혜영 작가는 병렬 구성된 두 여성의 이야기가 마지막 문장에서 접합되는 추리적 기법의 으로 흥미로운 장편서사의 세계를 예고했다.
70ㆍ80년대 활황을 맞았던 계간지 시장은 90년대 중반 이후 그야말로 급격한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현재까지 쇠퇴일변도다. 국내 계간지 중에는 정기구독자를 가장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90년대 2만명으로 추산되던 독자는 현재 1만~1만1,000명 선으로 반토막 났다. 도 80년대 5,000부 발행되던 것이 3,500부 수준으로 줄었고, 민음사가 발행하는 도 1,700부 정도 발행한다.
계간지 발행에 따른 연간 비용 손실도 상당하다. 호당 원고료만으로 약 2,500여만원이 드는 데다 3,000부 정도 발행하는 데 제작비만 1,000만원가량이 소요된다. 발행부수에 따른 편차는 있지만, 3,000부 기준으로 매년 대략 1억4,000만원의 비용이 드는 셈. 이렇게 만들어진 책이 상당수 재고로 남는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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