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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크선 덫에 걸려… 해운업계 머나먼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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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크선 덫에 걸려… 해운업계 머나먼 봄

입력
2013.04.0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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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크선(Bulk Carrierㆍ벌커)’은 철광석과 석탄, 곡물 등 포장하지 않은 화물을 실어 나르는 전용선이다. 자원운송을 전담한다는 점에서 수급상황, 유가, 환율 등 경기 변동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선종이기도 하다. 세계 경제가 좋은 시절을 누릴 때는 물동량과 운임이 폭등해 해운ㆍ조선업계도 덩달아 즐거운 비명을 지르지만, 경기가 급속히 냉각되면 동반 부진에 빠지는 식이다.

국내 해운업계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벌커의 몰락’에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STX팬오션의 공개매각이 무산된 데에는 벌크선 시황부진이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자산규모만 6조5,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1위 벌크선임에도 3개월 동안이나 인수의향서(LOI)를 낸 기업이 한 곳도 없었다.

STX팬오션에 이어 2위 업체인 대한해운도 매물로 나왔으나 주인을 찾지 못하고 상장폐지 대상 목록에 올라 있다. 업계 관계자는 “STX팬오션이 시장에서 외면을 받은 근본적 이유는 벌크 사업으론 미래의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벌크 시황 악화는 해운사들의 실적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1,2위 해운업체인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해 모두 영업적자를 냈다. 그러나 한진해운의 당기순손실은 전년보다 2,000억원 감소한 6,380억원을 기록한 반면, 현대상선(-9,989억원)은 오히려 손실폭이 5,300억원이나 늘었다. 벌커 취급 물량이 14%에 불과한 한진해운과 달리 현대상선은 총 매출에서 벌커가 차지하는 비중이 27%에 이르는 탓이다.

특이한 건 세계 경기가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는데도 벌크선 운임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점. 작년 석탄의 벌크 해상물동량은 전년대비 8.7% 증가한 10억9,600만톤을 기록했다. 여기에 선박해체 물량도 사상 최대인 5,900만DWT(재화중량톤수)를 나타냈다. 건조한지 10년밖에 안된 배도 마구 폐선 처리하는 추세다.

하지만 벌커 운임과 용선 비용 등 종합적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벌크선운임지수(BDI)는 작년 1986년 이후 최저치인 918을 찍었다. 한창 때인 2007년(7,074)과 비교하면 거의 10분의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운임이 계속 바닥을 기는 것은 공급된 배가 너무 많아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해운경기가 이미 침체로 돌아선 2010년에도 신조선 발주량이 호경기 때와 맞먹는 1억200만톤(DWT)를 기록할 정도로 시장 상황을 오판했다”며 “국내 중소조선사들이 현재 빈사상태에 빠진 것도 중국발 물량에만 매달려 다른 선종의 수주 노력을 게을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당시 주문 받은 배들이 속속 인도되다 보니, 물동량이 늘고 아무리 선박을 해체해도 제값을 받기 어렵다는 얘기다. 실제 지난해 선박 공급 증가분(12.8%)은 물동량 증가분(5.1%)을 크게 웃돌았다.

앞으로 벌크선의 저주는 풀릴 수 있을까. 동남아시아 등 신흥개발국을 중심으로 자원 수요는 꾸준히 늘겠지만, 선박 공급과잉은 여전히 부담이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올해도 1억DWT가 넘는 선박 발주잔량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며 “해운업계가 저운임 기조에서 벗어나려면 선박의 수급 균형을 맞추는 일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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