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가 처한 경제난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몰타로 회사를 이전할 것을 제안합니다. 몰타는 낮은 세율은 물론, 유연하고 활력 있는 금융서비스 제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몰타의 한 로펌이 외국인 자산가를 고객으로 두고 있는 키프로스의 변호사와 회계사들에게 최근 발송한 이메일 내용이다. 유럽의 대표적 조세피난처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구제금융 대상으로 전락한 키프로스에서 고객을 빼내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일 보도했다.
몰타 스위스 룩셈부르크 케이맨제도(영국령) 등 유럽은 물론이고 아랍에미리트연합 싱가포르 등 중동ㆍ아시아 국가, 터키계가 장악한 북키프로스까지 고객 쟁탈전에 가세하고 있다. 키프로스는 규모 2위 은행의 청산 등 고강도 은행 구조조정을 앞두고 엄격한 자본통제(국외송금 금지)를 시행 중이지만 외국인 기업가와 예금주의 상당수는 해외계좌를 새로 개설해 탈출 채비를 하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키프로스 금융계는 “은행 서비스와 다른 금융 서비스는 별개”라며 방어에 나섰다. 업계 이익단체인 키프로스자산신탁협회는 “키프로스에 회사를 둔 외국인이라면 은행계좌는 다른 나라에 트더라도 해외 회사 운용에 필요한 서비스는 여기서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쟁국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크다. 창업 컨설팅사를 운영하는 배실리스 제르탈리스는 “자본주의를 신봉하지만 넘어진 사람을 떠밀고 때리는 것은 비윤리적 행위”라고 말했다. 니콜라스 파파도풀로스 의회 재무위원장은 “우리는 늑대 무리에 던져졌고 늑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개탄했다.
키프로스는 은행 부문 총자산이 국내총생산의 8배에 이를 만큼 금융 의존도가 높다. 또 주로 세금 회피를 목적으로 설립된 32만여개의 외국계 기업이 실업률 15%에 이르는 노동시장을 지탱하고 있다. 자본 유출에 매우 취약한 구조다. NYT는 유로존 소속으로 키프로스 공략에 나선 몰타와 룩셈부르크 역시 은행 부문 자산이 국내총생산의 각각 8배, 22배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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