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건설은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 사옥(지분 71%)을 하나다올자산운용에 1,378억원을 받고 팔았다. '세일 앤 리스백'(Sale & Lease Back) 방식이라 앞으로 15년간 해당 건물에 세 들어 살 수 있지만 임직원들의 상실감은 크다. 1986년 준공 당시 강남권에서도 파격적으로 높은 층수(지하 4~지상 20층, 연면적 4만㎡)와 골조 윤곽이 드러난 외관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20년 넘게 사옥으로 쓰인 정든 건물이기 때문이다.
두산건설 관계자는 "회사의 상징인 사옥을 팔게 돼 안타깝지만 주택경기 침체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두산건설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주택사업장 미분양 등의 여파로 올해 초 그룹으로부터 1조원을 지원받았다.
건설회사들이 보금자리나 다름없는 사옥을 잇따라 팔고 있다. 부동산경기 침체가 길어지자 대형업체들은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중견업체들은 살아남기 위해 사옥 등 자산매각에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31일 건설 및 자산운용업계에 따르면 GS건설은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의 사옥인 GS역전타워 매각을 진행 중이다. 베스타스자산운용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평가금액은 1,500억~1,600억원이다. GS건설은 사옥 매각 후 내년 상반기 완공되는 국민연금공단 소유건물(종로구 청진동)을 임차해 입주할 계획이다.
GS건설은 "서울 남대문과 강남에 흩어진 사업본부들을 통합시키는 차원"이라고 애써 사옥 매각의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지난해 영업실적 악화에 따른 재무구조 개선과 현금유동성 확보가 진짜 목적이라고 진단한다.
실제 GS건설은 중동 등 해외 플랜트시장 과열에 따른 수익성 악화 탓에 지난해 영업이익(1,600억원)이 2011년 대비 63% 급감했다. 더구나 임차해 들어가는 청진동 신(新)사옥 역시 GS건설이 부동산 호황기 때 오피스빌딩으로 짓던 중 글로벌 금융위기로 경기가 꺾이자 유동성 확보를 위해 국민연금공단에 1조2,000억원을 받고 판 건물이다.
대우건설은 최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사옥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매각 후 5년간 임대 조건)로 도이치자산운용을 선정했다. 당초 대우건설은 2,868억원에 이 건물을 살 수 있는 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가격이 예상보다 높게 평가(3,900억원대)되자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대우빌딩(지하 6~지상 19층, 연면적 3만9,446㎡)을 LG전자에 매각한 바 있다.
업계 수위를 다투는 대형업체뿐 아니라 채권단이나 법원 관리 하에 있는 건설회사들도 생존을 위한 자산 매각에 필사적이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중인 쌍용건설이 대표적이다. 사옥이 없는 쌍용건설은 지난해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시공 중인 오피스ㆍ오피스텔 사업장 중 호텔 부분을 맥쿼리자산운용(960억원)에, 남산에 있는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을 현대그룹(1,600억원)에 팔았다. 올 들어선 2,000억원대 우이동 콘도 매각을 진행 중이다.
법정관리 중인 풍림산업도 지난해 사옥을 팔았고, 우림건설 사옥은 현재 경매절차가 진행 중이다. 빌딩 정보사이트 알코리아 황종선 대표는 "건설회사들이 상징성이 큰 사옥을 포함해 알짜배기 자산을 판다는 건 그만큼 생존 위기감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옥까지 팔아야 하는 건설회사들은 피눈물을 흘리는 반면 자산운용회사들은 덩치가 큰 건물이 잇따라 나오면서 군침을 흘리고 있다. 대형빌딩 시장(거래금액 1,000억원 이상)이 최고 활황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실제 서울 광화문 요지의 대우건설 사옥 매각에는 금융기관과 자산운용사 등 10여 곳이 경쟁에 참여했고, 9호선 여의도역 역세권인 삼환까뮤 사옥엔 자산운용사 등 3곳이 매수의향서를 제출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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