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대형 로펌으로 간 고위관료들에게 무조건 돌을 던질 수는 없다. 잘했다고 박수칠 것까지는 없지만, 그렇다고 비난만 하기에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문제는 대략 세 가지 점을 따져봐야 하는데, 첫 번째는 로펌행 자체가 타당한 지 여부다. 국정감사나 인사청문회 때마다 그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공정거래위원회 고위공무원들의 예를 한 번 들어보자. 1급 혹은 차관급을 끝으로 옷을 벗었을 때, 보통 50대 초ㆍ중반인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다지 많지 않다.
우선 국세청과 함께 공정위 공무원들의 로펌 취업이 유독 많은 건 산하기관이 없는 탓도 있다. 통상 고위관료들은 퇴직 후 소속부처 아래 공기업 사장이나 유관협회장 등으로 가는데, 그렇지 않은 부처 출신들은 이런 ‘낙하산’ 취업이 불가능해 결국 민간부문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대기업으로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공정위 주요 업무가 대기업의 횡포를 제재하는 것인 만큼, 옷을 벗었다고 곧바로 재벌 품에 안긴다는 건 법적 제한여부를 떠나 공직윤리상 용납될 수 없다. 그렇다고 평생 공무원만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업을 시작할 수도 없고, 대학 강의나 봉사활동으로만 여생을 보낼 수도 없다.
이들에게 로펌은 업무전공을 살리면서 높은 급여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요즘은 돈 때문에 로펌으로 가는 중간간부들도 하지만, 퇴직 고위관료 상당수는 “가고 싶어서 보다 달리 갈 곳이 없어서 갔다”고들 말한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모든 공직자가 다 김능환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처럼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짚어봐야 할 두 번째 포인트는 이들이 로펌에서 어떤 일을 하느냐다. 퇴직관료의 로펌행이 항상 논란이 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이들을 보는 세간의 시선은 아주 따갑다. 로비스트, 좀 비하하면 브로커 정도로 본다. 전관의 위치를 이용해 후배 공무원들에게 청탁하고, 이를 통해 제재를 무마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뒷거래를 잘하면 높은 급여를 받고, 제대로 못하면 로펌에서도 쫓겨나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뭐 그런 경우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까지 ‘더러운 일’을 하는 건 아니다. 예컨대 공정위 사건의 경우 법원과 달리 외부전문가가 포함된 전체 위원회 심결을 거치기 때문에, 전관의 로비엔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담당 공무원 재량으로 결정되는 사건들도 있지만, 이런 경미한 케이스들은 대형 로펌까지 오질 않는다.
로펌에서 이들의 역할은 엄밀히 말해 법의 허점을 찾는 일이다. 조사받는 기업, 제재를 앞둔 기업에 반박 논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공무원시절 해당 법률을 직접 만들고 집행했던 만큼, 변호사들보다 법의 취약점에 해박한 건 당연하다. “현직 때는 나쁜 기업들을 때려잡다가 퇴직 후엔 이들을 변호하는 게 적절한가”라는 비판이 있지만, 그런 잣대라면 범인 잡던 검사는 퇴직 후 변호사도 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포인트는 로펌에 갔던 관료들이 공직에 복귀하는 문제다. 단언컨대 이건 안 된다고 본다. 로펌에 가는 건 막을 필요가 없지만, 다시 돌아오는 건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퇴직 관료가 로펌 가서 많은 돈을 벌고, 다시 장관으로 컴백해 권력과 명예까지 얻는다고 생각하니 배가 아프고 심사가 뒤틀려서 그러는 건 물론 아니다.
핵심은 이익상충이다. 로펌에 있는 동안 수많은 기업ㆍ단체들의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간여했을 텐데, 그런 전력을 안은 채 공직으로 돌아오는 건 대단히 부적절하다. 이건 실제 이익상충이 발생했느냐, 혹은 당사자가 얼마나 양심적이냐 와는 전혀 다른 얘기다. 이익상충은 꼭 무기중개상 출신 국방장관에게만 생기는 게 아니며, 로펌 출신 장관들에게도 얼마든지 가능성이 열려 있다.
박근혜정부는, 아니 이후 정부도 로펌 인사들을, 적어도 관련 요직에는 쓰지 않아야 한다. 워낙 유능한 인재라 아쉬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당사자들도 관운이 거기까지라 생각하고, 입각요청을 뿌리치는 게 옳다. 공직복귀를 꿈꾼다면 애초 로럼에 가지 말 것이며, 일단 갔으면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한다. 그게 서로 쿨한 일이다.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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