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는 요즘 희색이 만면하다. 전문가들이 혹평한 새 정부의 '2013년 경제정책방향'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한다"고 환영했다. 중기정책자금 조기 집행과 미래창조펀드 조성,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서비스 분야 중기적합업종 확대 등 중기지원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는 기실 예상됐던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후 중소기업중앙회를 가장 먼저 찾았다. 1월 7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첫 모임을 주재한 자리에선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고 약속했다. '중소기업 대통령'을 자임한 셈이다. 이후 두 달 동안 중소기업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 중앙부처를 비롯해 지방자치단체, 금융권 등에서 다양한 중기지원책이 쏟아졌다. 금융권이 내놓은 중기정책자금 및 보증지원 규모만 수백 조원에 달한다.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나 대기업의 고질적인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ㆍ인력 탈취 등 '손톱 밑 가시'를 없애는 건 물론 중요하다.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배려도 필요하다. 문제는 이런 정책들이 새삼스러운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중앙부처와 지자체 등에서 진행 중인 중기지원책만 1,100개를 넘는다. 역대 대통령도 모두 중기 육성 및 보호를 부르짖었다.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각종 지원책을 담은 '중소기업 육성 로드맵'이 만들어졌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혈세가 투입됐다.
하지만 독일처럼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탄탄한 중소기업, 이른바 '히든 챔피언'은 거의 탄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만 심화했을 뿐이다. 젊은이들은 여전히 중기 취업을 기피하고, 영업활동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중소기업이 계속 늘어나는 게 현실이다. 특혜성자금 지원 위주의 전시성 대책을 남발해온 탓이다.
그래도 중기는 우리 경제의 희망이다. 구조적인 저성장이 고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지금, '일자리'와 '복지'의 선순환을 일궈내려면 중기 경쟁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일자리창출 능력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을 다시 짜야 한다. 뭘 고쳐야 할까.
첫째, 중기 보호도 중요하지만 경쟁력을 상실한 '좀비 기업'의 퇴출도 원활히 이뤄져야 한다. 정치논리로 한계중소기업을 구제하는 관행이 되풀이되면 시장에 과잉경쟁이 초래되고, 정작 기술력 있는 기업들이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 선택과 집중이 이뤄져야 '히든 챔피언'도 나올 수 있다.
둘째, 13개 중앙부처와 16개 광역자치단체에서 중구난방으로 진행돼 온 각종 지원사업을 재정비해야 한다. 다양한 지원책이 전문분야별로 특화되고 시너지효과도 낼 수 있도록 정책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셋째, 해외진출을 시도하는 중기부터 집중 지원해야 한다. 독일이 세계 최대의 무역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해 온 강소기업이 많았기 때문이다. 좁은 국내시장에서 보호정책에 안주하기보다는 과감히 세계시장을 노크하는 중기를 적극 지원해야 성장과 고용 창출에 도움이 된다. 중소기업이 해외시장에 나가서 경쟁하지 않고 지금처럼 대기업의 하청기지 역할에만 머물러 있으면 성장과 일자리는 요원하다.
넷째, 중소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려면 영어, 중국어 등을 구사할 수 있는 우수 인력이 유입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임금수준과 근무환경으론 불가능하다. 독일은 1940년대 말부터 5~6년간 중소기업이 엔지니어 등 우수 인력을 고용하면 정부가 대기업과의 임금격차를 보전해주는 정책을 폈다. 이를 통해 대기업만 선호하던 우수 인력이 중기에도 들어갔고, 중기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정부지원 없이도 홀로서기가 가능해졌다. 현재 독일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직원의 임금 차이는 10%를 넘지 않는다. 반면 국내 중기 임금은 1980년대 대기업의 80% 수준이었으나 지금은 50%로 급락했다. 우수 인력이 들어가 연구개발(R&D) 및 해외 마케팅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급선무다.
[메아리/3월 30일] 중기 지원책 이미 차고 넘친다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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