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 대청소를 했다. 집안 곳곳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걸레질을 했다. 내친 김에 옷장 정리까지 하면서 오랫동안 입지 않았던 옷가지를 추려내 골목에 서 있는 헌옷수거함에 넣어버렸다. 그런데 어떤 옷은 어떤 추억 때문에, 또 어떤 옷은 그 옷에 얽힌 사연 때문에 헌옷수거함에 들어가기 직전 구제되었다. 그 옷들은 이제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을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버리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이건 무슨 심리인가. 쿨한 사람들은, 쓸 만큼 썼거나 낡아버려서 더 이상 쓸 모가 없어진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나 같은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 하지만 그 ‘쓸모’라는 게 내 관점에서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은 거다. 예를 들어 어떤 옷이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정도로 해져서 쓸모가 없어졌을 때, 나는 그 옷이 품고 있는 전혀 다른 차원의 쓸모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그 옷을 입고 만났던 사람들, 그 옷을 입고 가보았던 타향의 기억들과 그 기억을 끄집어내는 동안 내 안에서 작동되는 정서적 환기는 내 관점에서 전적으로 그 옷이 가지고 있는 쓸모인 것이다. 수첩 같은 것도 내가 버리지 못하는 것 가운데 하나인데, 그 안에 적혀 있는 어떤 단어들, 누군가의 전화번호가 내 삶의 알리바이로서 여전히 쓸모 있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기에 버리지 못한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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