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의 전제는 격이다.', '좋은 디자이너들은 규칙을 깨트리기에 앞서 모든 규칙들을 배운다.'. 학부 타이포그래피 수업 강의계획서의 첫머리에 강조하는 멋진 말들이다. 전자는 한글 디자이너인 안상수 선생의 말씀이고, 후자는 독일의 글자체 디자이너인 에릭 슈피커만 선생의 말씀이다.
시각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전공에서 타이포그래피란, 어학에 비유하자면 회화나 청취, 독해, 작문이라기보다는 문법에 가깝다. 타이포그래피 분야의 실무와 이론에서는 개성과 창의성 못지않게 올바른 규칙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각 세부 분야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비실무자들이 디자인에서 개성과 창의성의 가치만을 불균형하게 비대화하면 곤란이 크다. 학부 3학년만 되어도 실습과 경험이 쌓여 격을 기본부터 철저히 갖추어야 할 필요성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아직 거침없는 표현력과 독창적 개성을 발휘하고 싶은 2학년에게 격을 익히도록 설득하는 것은 격을 가르치는 것 이상으로 힘이 든다. 그래도 디자인을 전공으로까지 택한 학생들이라면, 수업에서 배움 이상으로 즐거움을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하여 '자애로운 선생님'된 도리로 이 격이라는 '쌉싸름하고 몸에 좋은 보약'에 살살 단맛을 입히는 노고 정도는 기꺼이 제공하려는 편이다.
그런데 나는 굳이 단맛까지 입히지 않더라도 문법적인 쌉싸름함 자체가 맛있다. 이 쌉싸름함을 맛으로 즐기기까지는 일정 수준의 성장을 거쳐야 하는 것 같다. 문법은 오로지 규칙을 지키고 올바른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서만 존재할까? 아니, 나는 문법이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문법을 관찰하고 탐구하며 활용하는 과정 자체에 두근두근 숨죽이게끔 하는 즐거움이 있다. 이는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저서 에서 주인공인 법제사가 계몽주의 시대의 법전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만족감과 비슷한 즐거움이다. 그가 말하기를, 이 세상에 훌륭한 질서가 내재되어 있다는 낙천적인 믿음 속에서, 합리성과 진리를 추구하며 엄숙하게 법 조항들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워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한다. 정말 그렇다.
한편,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종이의 규격 역시 프랑스 계몽시대의 산물이다. 종이는 타이포그래퍼들이 다루는 글자가 담기는 기본 공간이기도 하다. 그 표준규격인 A0 전지의 세로와 가로를 곱한 면적은 1제곱미터이다. 미터법이 단위로 적용되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프랑스 정부는 그들이 고안해내서 강제 집행한 미터법을 종이의 규격으로 적용하도록 법령을 공포했다. 그 규격에서는 반으로 접어서 잘라도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항상 유지되도록 했다. 이 비례는 √2:1이다. √2:1의 비례를 가지면서 가로와 세로의 곱이 1제곱미터가 되게 하려면? A0 사이즈의 1.189m x 0.841m는 이렇게 도출된 수치이다. 이론적으로는 합리적이다.
전지를 다섯 번 접은 A5 규격은 책의 판형으로 자주 적용된다. 비례는 물론 √2:1이다. 그런데 1.414(√2):1의 비례는 소위 황금비율이라 불리는 1.618:1에 비교하면 한참 넓죽하다. 서점의 책들이 대개 푹 퍼진 체형을 가진 이유는, 사람들이 표준규격에 맹목적이고 수동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규격을 이탈하면 종이의 낭비가 심해지니 지구 환경에 민폐가 된다. 하지만 재치를 발휘해서 규격을 가로 방향으로만 조금 잘라내면 늘씬한 비례를 가지면서도 손에 날렵하게 들어오는 아름다운 책의 판형이 된다. 이렇듯 규칙 위에 쌓여가는 먼지에 청량한 바람을 불어주는 것이 우리 디자이너들의 몫이다. 격(格)을 알고, 품격(品格)을 갖춘 후에, 규격(規格)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때, 파격(破格)이 성립된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이제 4주차에 접어든다. 지난 주, 3학년 수업의 한 학생이 전공서의 독후감을 통해 내게 이런 말을 전했다. 격에 대해 꽤 깊이 고민한 모양이다. "'격'을 억압적 굴레에 불과하다고 잘못 이해하는 치기 어린 '파격'이란 차라리 '실격(失格)'이 아닐까요?"
유지원 타이포그래피 저술가·그래픽 디자이너
유지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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