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특파원들이 외국에 나가서 직접 취재하기보다는 외국 신문을 옮겨 쓰는 게 업무의 대부분이던 80년대 특파원 기사를 보면 모든 문장이 이렇게 시작하는 기사가 꽤 많았다. '뉴욕타임즈는…/ NYT는… /미국의 권위지는…' 알고 보면 뉴욕타임즈도 NYT도 미국의 권위지도 다 같은 신문이다. 뉴욕타임즈 내용을 그대로 옮기되 같은 단어를 반복하면 나쁜 문장이라는 기사쓰기의 규범 때문에 이렇게 우스꽝스럽게 주어를 창조해서 불렀다.
같은 단어를 반복하기 싫어 달리 부르는 단어를 열심히 찾던 신문도 당시에 어쩔 수 없이 반복하던 주어가 있었는데 바로 'O대통령'이라는 주어였다. 대통령이 장관들과 나눈 국무회의나 각 부서 업무보고가 끝나면 나오는 기사가 온통 대통령 훈시로 채워지던 시절 일이다. '전두환대통령은…/전 대통령은…'정도로 변화를 주는 게 고작이었다. 이것은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은…'으로 이어졌다.
이런 습관은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이르러 바뀌기 시작하다가 노무현 대통령 시대에 이르면 확연히 달라진다. 국무회의가 대통령의 훈시를 듣는 자리가 아니라 국무위원들이 업무를 토론하는 자리로 운용된 덕분인지 결과로 나오는 기사는 '정부는…' 혹은 'OO부는' 식으로 주어가 대통령에서 정부 전체 내지 특정 부서로 바뀌어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하면 이명박 대통령은 '내가 해보니까' 주의로 국무회의나 각 부서 업무 보고에서 지시사항이 적지 않았지만 각 부서 업무보고 기사가 '이명박 대통령은'으로만 나가지는 않았다. 그만큼 각 부처가 창안하여 대통령에게 올리는 내용이 보도의 주 내용이지 대통령이 업무 보고를 받으면서 먼저 떠드는 훈시 내용이 보도의 주 내용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러 다시 '박대통령은' 시대가 돌아왔다. 박 대통령은 최근 계속되는 각 부처 업무 보고에서 업무를 보고 받는 것이 아니라 지시에 주력하고 그 내용이 기사의 주류가 됐다. 전두환 노태우 시절의 자랑스런 전통을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박 대통령은' 으로 주어가 시작된다. 27일 통일부 외교부 업무 보고에서는 박 대통령이 북한과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주요 뉴스가 됐고 28일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업무 보고에서는 공공기관부터 지방대 취업 할당제를 실시하라고 한 것이 주요 뉴스가 됐다. 28일 경제정책 점검회의도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만 장황하게 소개가 됐다. 기자들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주요 회의에 들어가볼 수 없기 때문에 청와대가 보도자료를 대통령 발언 중심으로 주면 기사는 그렇게 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보도자료만 그런 게 아니라 촬영화면조차 대통령 혼자 떠들고 장관들이 열심히 받아 적는 장면이 국무회의 때마다 등장한다. 참 한심한 무리들이다. 한 사람이 아무리 똑똑하다 한들 여러 사람의 두뇌를 당할 수가 없다. 각 부처 장관을 따로 두는 것은 각 부마다 달리 담당하는 영역의 이해관계를 잘 대변하고 이를 서로 조율하는 의미가 있다. 대통령 혼자서 다 알아서 지시하고 그 내용이 잘 전달만 되는 것으로 국정이 운영된다면 뭐하러 장관을 따로 두겠는가. 장관 한 명 연봉만 해도 1억2,000만원이나 되는데 그 돈 아껴서 격무에 시달리는 사회복지 공무원이나 더 많이 채용하는 게 낫지 말이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유능했으면 당선되고 두 달, 부임한 지 한 달이 넘도록 내각조차 다 구성을 못했을까. 장관으로 임명한 이들도 탈법 불법이 없는 이가 없고 이보다 더 심한 잘못을 한 11명이 날라갔다. 날라간 이들조차 워낙 몰염치해서 한가지 부정으로는 즉각 자진사퇴도 않으니 사퇴를 요구하느라 온 나라 정치력이 한달 넘게 내각 구성을 맴돌고 있다. 이런 국가적 낭비가 없다. 그만큼 장관들이 신통찮아서 대통령이 일일이 지시를 하는 것인지 몰라도 과외는 대통령도 남이 안보는 데서 받듯 장관들도 안보는 데에서 공부를 시키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라면 적어도 국민들 앞에는 민주적으로 움직이는 시늉만이라도 하기 바란다. 그게 안되면 해산을 하라.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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