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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혁명의 적, 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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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혁명의 적, 복지국가

입력
2013.03.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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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경영하고 있는 모든 국가들은 나름대로의 복지국가를 착실하게 발전시켜왔다. 아무리 낯설다고 투정부려도, 단 하나의 예외도 찾을 수 없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재벌과 대기업 중심으로 '복지국가 대한민국'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꽤 있는 것 같지만, 복지국가가 사회주의혁명의 주적(主敵)임을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자본'을 저술한 칼 마르크스는 모든 좌파이론가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자본주의에 관한 단순명료한 진단을 통해 '시한부선고'를 단언하였던 그는, 국가를 자본의 '미천한 시녀'라고 폄하하였다. 노동자 몫을 욕심껏 빼앗아 가는 자본주의의 추악함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질 것이며, 아무리 강력한 국가라도 막을 수 없으리라 예단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혁명에 의하지 않고서는 사람이 중심에 서는 새로운 세상을 기대할 수 없다'라는 그의 최종결론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아뿔싸! 마르크스의 이러한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자본주의가 곪아터져 혁명이 일어나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위세를 더해 간 것이다. 동시에, 마르크스를 스승으로 여겼던 수많은 좌파이론가들의 당혹감도 갈수록 깊어졌다. 어떤 이들은 마르크스를 버렸지만, 어떤 이들은 스승의 이론을 수정하여 되살리는데 인생을 걸었다. '신 마르크스주의자'라 불리는 일군(一群)의 이론가들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끈질기게 살아남다 못해 점점 더 커지기까지 하는 '자본주의의 미스터리한 생존방식'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복지를 통해 자본주의를 진화시키는 데 국가가 한 몫 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국가를 철저히 무시했던 마르크스의 단견에서 벗어나자, 자본주의의 파수꾼인 복지국가가 바야흐로 그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잘 생긴 두 아들이 2010년 영국 노동당의 당수경선에서 최종승부를 겨루면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아버지 밀리반드가 이 분야의 대표적인 좌파 이론가다. 자본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서는 복지국가를 '도구'로 이용할 줄 알아야 진정한 자본엘리트라는 그의 유명한 일갈은 아직도 회자된다. 판례가 쌓이면서 개별 공장주들이 산업재해의 소송비용을 따로따로 감당하는 것이 점점 비싸지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어느 순간, 산재보험료를 미리 납부하는 게 훨씬 싸지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복지국가를 활용하지 못하는 자본가가 있다면 그보다 멍청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밀리반드의 주장이다.

풀란차스라는 또 다른 좌파학자도 복지국가 때문에 혁명이 미뤄진다는 비슷한 주장을 내놓았다. 밀리반드의 해석과 다른 구석이 있다면, 현대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모습을 볼 때 자본엘리트들이 복지국가를 먼저 주장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한 해에도 몇 번씩이나 개최되는 주주총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야하는 것이 자본엘리트들의 숙명이라면, 단기적 수익창출을 우선시하는 주주들의 요구에 맞서기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풀란차스의 설명 속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자이면서도 자본으로부터 '상대적인 자율성'을 지닌 국가엘리트의 역할이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이들에 의해 주도되는 복지국가가 자본주의의 지속적 성장을 견인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의 신봉자들이 복지국가를 보는 눈이 이렇듯 곱지 않다면, 복지국가가 자본주의적 발전의 최대공헌자요 은인임은 오히려 자명해진다. 복지국가를 줄이려 애썼던 신자유주의가 월스트리트형 '카지노자본주의'의 추한 속살을 드러낸 지도 어언 5년. 성장과 함께 하는 현명한 복지전략의 주가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유래 없는 여야의 복지경쟁 끝에 탄생한 박근혜 정부의 '한국형 복지국가론'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지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품격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치자. 자본주의의 업그레이드를 통한 두 번째 한강의 기적을 위해서라도 복지국가를 제대로 쓸 줄 아는 기본기만은 갖춰야 한다.

안상훈 서울대 교수ㆍ사회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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