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에게 대국민 사과만큼이나 하기 싫은 일도 없었을 테지만 대부분 피해가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첫 문민 대통령임을 자랑스러워 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1년 가량을 남겨놓고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다. 한보 비리와 관련한 뇌물수수 및 권력남용 혐의로 구속된 차남 때문이다. 후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1년 3개월 만에 ‘옷 로비’사건으로 국민에게 사과했고, 임기 8개월을 남기고 두 아들이 비리로 구속돼 또 한번 국민 앞에 머리를 숙여야 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측근 비리가 불거져 대국민 사과를 연례행사처럼 이어갔다. 그의 첫 번째 대국민 사과는 취임 8개월이 안된 시점에 이뤄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첫 대국민 사과는 더 빨라졌다. 광우병 쇠고기 촛불시위 사태와 관련해 2008년 5월 22일에 첫 사과를 했으니 취임 후 3개월이 채 안 돼서였다. 임기 5년 차인 지난해 7월 친형 이상득 전 의원 구속 등 친인척 비리와 관련해 6번째 대국민 사과를 함으로써 이 분야 신기록을 작성했다.
▦ 문민정부 이후 각 정권을 거치면서 대국민 사과 횟수가 점점 늘고 첫 사과 시기는 더욱 빨라지는 추세를 보여왔다. 박근혜 정부는 어떨까? 임기 중 사과 횟수 증가는 알 수 없지만 대통령의 첫 사과 시기가 빨라지는 추세는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취임 1개월을 갓 넘긴 때에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실패에 대해 야당의 대국민 사과 요구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실검증 책임을 물어 청와대비서실장 또는 민정라인의 교체 주장이 일부 없지는 않다.
▦ 하지만 제대로 가동 되지 않은 인사추천 및 검증 라인에 책임을 묻는 것은 번지수가 한참 틀렸다. 6명이나 되는 장ㆍ차관급 중도낙마 사태는 박 대통령의 ‘나 홀로 수첩 인사’에서 비롯됐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불통 인사로 빚어진 혼란은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를 40%대로 끌어내린 주 요인이다. 임기 초 국정동력 저하 추세를 되돌리려면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 인사 실패에 대한 진솔한 반성을 담은 대국민 사과야말로 바로 그런 계기가 되지 아닐까.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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