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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금광과 같은 존재, 스마트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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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의 향기] 금광과 같은 존재, 스마트폰에게

입력
2013.03.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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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넌 금광이란다. 기분 좋지 않니? 대한민국 인구 수보다 더 많은 너 하나하나가 금광이라니 말이다. 그런데 혹시 금광에 묻힌 금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니? 글쎄, 내가 워낙 무식해서 잘 모르는데 아무리 높아도 1%는커녕 0.1%도 안 되지 않겠니? 그러니까 흙 1톤(1,000㎏)을 캐면 그 안에 10㎏의 금이 포함되어 있어야 1%인데 꿈같은 이야기지?

그래, 맞는단다. 금광은 알고 보면 트럭 수만 대 분량의 산 하나를 모두 파헤쳐 못쓰게 만든 후, 그 안에서 고작 금괴 한 가방을 건지는 곳이란다. 그렇지만 그건 네 탓이 아냐. 인간은 이미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서는 산은 고사하고 대륙까지 정복해서 파헤치고 마니까 말이야.

이제 너를 금광이라고 부른 까닭을 알겠지? 넌 금광이야. 금광 가운데서도 대단한 금광이지. 그 안에 어떤 스마트(똑똑한)한 것을 감추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99.999%는 인간을 황폐화시키는 것들로 채워져 있으니 말이야. 아직도 모르겠다고? 그럼 네가 왜 금광인지, 네가 이룬 업적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려줄게.

우선 너는 사람들로부터 생각이라는 것을 빼앗아버렸단다. 사실 인류 역사상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시민들 소유의 능력과 물질 가운데 가장 싫어한 게 바로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네가 모든 시민들로부터 생각이란 녀석을 제거해 버렸으니 얼마나 고맙겠니? 그래서 2013년 대한민국에서는 짐승만도 못한 행동을 한 사회 지도층이란 자들조차 자신에게 생각을 맡겨버린 시민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단다. 게다가 너만 잘 이용하면 모든 시민의 일거수일투족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지배할 수 있게 되었으니 숨어서 키득거릴 것은 뻔하지 않겠니? 그러고 보면 반세기도 더 전에 모든 시민의 일상을 감시하는 국가를 예견한 조지 오웰이야말로 지도자들의 영원한 원수겠지. 그의 경고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너를 이용해 전 시민의 삶을 감시, 감독할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다음으로 네가 인간에게 전해준 뛰어난 성과는 몰입능력의 배가란다. 네가 탄생하기 전에 인간들은 몸과 마음을 이완시킨 후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새로운 상상과 창의, 발상의 전환을 가져왔지. 그런데 네가 탄생한 후 사람들은 이완의 삶을 살지 않는단다. 집중! 몰입! 오직 이것뿐이지. 특히 게임, 오락, 연예, 동영상, 소음에 버금가는 노래 따위가 그 대상인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집중력 행사가 과거와는 달리 아무 곳에서나 가능하다는 점이지. 엊그제는 한 국회의원 나리께서 드넓은 국회 본회의장에서 너를 통해 여성의 신체에 몰입하시는 장면이 보도되었더구나. 이 얼마나 위대한 변혁이니!

마지막으로 넌 인간의 손과 발, 눈과 머리, 귀와 입이 각기 독립적으로 움직이도록 진화시켜 주었단다. 과거에 인간들은 걸을 때는 눈으로 앞을 보고 귀로 사방에 주의를 기울이며 발로는 장애물을 피하며 안전하게 걸었지. 그런데 이제 인간들은 발은 제 마음대로 가도록 하고, 눈은 네 5인치도 안 되는 화면에 집중하며, 손으로는 그 작은 자판을 두들기고, 귀로는 너의 심장 박동 소리만 듣는단다. 그러니 인간의 능력이 얼마나 진화한 거니? 그러니 얼마 안 가 인간이 문어와 같은 존재로 진화할 것은 분명한 이치란다. 팔, 다리, 머리, 손가락, 모두 따로 움직이는 문어와 같은 존재! 정말 생각만 해도 황홀하지 않니? 생각하는 능력은 제거해서 언제든 어부가 쳐 놓은 통발 속으로 발길을 옮겨 안락함을 취하는 집중력!

아, 정말 생각만 해도 행복하기 그지없단다. 그러니 스마트폰이여, 네 안에 손톱에 낀 때만큼도 안 되게 담긴 금에 대해 늘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렴.

추신: 그런데 난 문어 대신 낙지를 좋아한단다. 그래서 오늘부로 너를 버리고 말았어. 이해해 주렴.

김흥식 서해문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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