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8일 재판을 통해 "헌법재판소의 한정위헌 결정은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한다"며 "법원이 따를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헌재 결정의 효력을 대법원이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양대 사법권력인 헌재와 대법원이 다시 충돌하고 있다.
두 기관이 한정위헌과 관련해 판결로 맞부딪친 것은 1996년 당시 한 국회의원의 양도소득세 취소 소송 이후 이번이 다섯번째다. '한정위헌'은 특정 법률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통상의 위헌 결정과 달리, '법을 이렇게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는 변형 결정이다. 대법원이 이를 부정하는 것은 헌재의 법률 해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다.
대법원 1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이날 KSS해운이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23조가 효력을 잃은 만큼 이에 근거한 법인세 부과를 취소해 달라'며 서울 종로세무서장을 상대로 제기한 법인세 부과처분 취소 재심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헌재는 위헌 여부 결정 권한을 행사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 법률 해석을 할 수 있을 뿐, 법률의 해석 기준을 법원에 제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법률 조항의 특정 해석과 적용만을 위헌으로 선언하는 한정위헌은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못박았다. 재판부는 이어 "한정위헌 결정은 헌법에 반하고 법원을 기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 사유도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법률 해석에 대한 판단 권한은 법원에만 있고, 헌재는 법률의 위헌성 여부만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지난해 5월 KSS해운이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23조가 유효라고 보고 세금을 물린 대법원 판결은 기본권 침해'라며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실효된 조항을 유효로 해석한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며 한정위헌 결정했다. KSS해운은 이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했지만 대법원이 기각한 것이다. 대법원은 '대법원의 기존 판단은 유효하기 때문에 재심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시, 대법원의 판결에 제동을 건 헌재의 결정을 정면으로 다시 뒤집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법원의 법률 해석에 따른 판결을 헌재가 한정위헌으로 결정하고 법원이 이를 재심으로 받아들인다면,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헌재가 다시 판단하는 사실상 '4심제'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이에 대해 공식 반응은 내놓지 않았지만 "한정위헌은 헌재가 당연히 내릴 수 있는 결정 형식으로 대법원이 주장하는 4심제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내부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에 따라 KSS해운은 사실상 기존에 낸 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KSS해운이 다시 사건을 헌재로 들고 가서 대법원의 재심 청구 기각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헌재가 또 '대법원의 재판을 취소하라'는 결정을 내리더라도 대법원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만약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대법원의 재심 거부가 쳇바퀴 돌 듯 되풀이돼 KSS해운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헌재 결정문을 제시하더라도 국세청은 '과세를 하라'는 법원의 판결문으로 대응할 것이 분명하다.
KSS해운은 상장을 전제로 기업에 조세감면 혜택을 주는 구 조세감면규제법 56조에 따라 1989년 사업연도 법인세를 신고 납부했다. 그러나 정해진 시한까지 상장을 하지 못하자 세무당국은 구 조세감면규제법 부칙 23조에 따라 감면받은 법인세와 방위세 65억원을 부과했다. KSS해운은 소송을 냈지만 1~3심에서 전부 패소한 후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당시 특례규정에 따라 세제 혜택을 받았다가 미상장으로 인해 과세 처분된 곳은 KSS해운을 포함해 모두 7개 기업으로, 현재 SK리테일과 GS칼텍스도 같은 취지의 재심을 청구해 서울고법에서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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