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호르몬 하면 흔히 키 크는데 필요한 물질이라고만 여긴다. 한창 성장할 시기인 청소년기까지 분비되다가 나이 들면 안 나온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성장호르몬은 누구에게나 일생 동안 계속 분비된다. 다만 성장기와 그 이후에 분비량과 주요 역할이 달라질 뿐이다.
이른바 노화방지 주사로 알려지면서 최근 성장호르몬에 대한 중년층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화뿐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병이 성장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성장호르몬이 중요하다고 해서 나이 들어 반드시 인위적으로 더 보충해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의견이 엇갈린다.
60대 성장호르몬 20대의 절반
잘 알려져 있듯 청소년기에 성장호르몬은 뼈를 키우고 근육을 증가시킨다. 아이들이 키가 자라고 몸집이 커지는 원동력이 바로 성장호르몬이다. 그런데 어른의 몸에서 성장호르몬은 인대를 튼튼히 하고 콜라겐(뼈와 연골, 피부, 혈관, 힘줄 등을 구성하는 단백질)을 증가시키며 근력을 키우고 지방을 분해하는 기능을 주로 한다. 골밀도를 높여 골다공증이나 골절의 위험을 줄여주는 것도 성인 성장호르몬의 주요 역할이다. 청소년 시기에는 양적, 외적 성장을, 성인 이후에는 질적, 내적 성장을 이끈다고 할 수 있다.
성장호르몬은 보통 20대 초반까지 분비량이 계속 증가한다. 그러다 25세 전후부터는 10년마다 약 14.4%씩 지속적으로 줄어든다고 보고돼 있다. 특히 40대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줄기 시작해 60대에는 성장호르몬 분비량이 20대의 절반 정도까지 곤두박질친다. 사실 성장호르몬 말고 다른 호르몬도 나이가 들면 마찬가지로 분비량이 줄어든다. 그런데 유독 성장호르몬이 관심을 받는 이유는 분비량이 크게 줄었을 때 생기는 증상이 일반적인 노화 현상과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복부비만 두드러지면, 혹시?
성장호르몬 감소로 가장 눈에 띄게 나타나는 증상은 체지방 증가다. 지방이 원활하게 분해되지 못해 상체, 특히 복부비만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성장호르몬 부족으로 근육의 양과 강도가 줄면서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비만을 부추긴다. 골밀도가 줄어 골다공증이나 골절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고, 몸의 대사기능이 전체적으로 떨어진다. 심하면 동맥경화증이나 고혈압, 당뇨병, 대사증후군에 걸릴 위험도 늘 수 있다. 심지어 기억력이 나빠진다는 보고도 나와 있다. 이 같은 증상들이 연이어 나타나면 자연히 활력이 없어지면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중앙대병원 재활의학과 서경묵 교수는 "성장호르몬 분비량이 지나치게 적어 이런 증상들이 심하게 나타난 사람에게 약으로 성장호르몬을 보충하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지난 20~30년 동안 여러 연구들로 증명됐다"며 "경제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국내에서도 삶의 질을 고려해 성장호르몬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나 보충 필요하진 않아
그러나 성장호르몬을 누구나 다 쉽게 보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서 교수는 "특히 암으로 치료 받고 있는 환자나 고혈압, 당뇨병 등이 잘 조절되지 않는 환자, 뇌압이 높은 사람, 당뇨병이나 다른 원인 등으로 망막에 염증이 생긴 환자, 임신 중인 여성 등은 쓰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성장호르몬은 반드시 의사의 처방에 따라 사전에 피검사 등으로 신체반응을 확인한 뒤 용량을 조절해가면서 써야 한다. 몸이 붓거나 손목이 저리거나 관절통, 근육통, 두통 같은 부작용이 보고돼 있기 때문이다. 또 체내 수분량이 줄면서 피부가 푸석푸석해지는 경우도 있다. 일각에선 무분별한 성장호르몬 주사가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서 교수는 그러나 "의사의 처방이나 상담에 따라 성장호르몬을 썼을 때 암 발생이 높아진다는 의학적 근거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중년에 접어들었다고 무턱대고 성장호르몬부터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병이 생길 만큼 분비량이 지나치게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면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나이에 맞는 정상적인 분비량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게 전문의들의 조언이다. 단백질을 꾸준히 섭취하고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을 계속하는 것 역시 성장호르몬 분비량 감소를 늦추는데 도움이 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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