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직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 수서경찰서는 26일 오후 늦게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모(39)씨를 추가로 입건 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 그 시점이 묘하다. 경찰이 이씨를 입건 조치한 것은 20일로 6일이나 지난 뒤다. 경찰은 "한 언론에서 취재를 시작해 공개했다"고 설명했지만, 공교롭게 이날은 이성한 경찰청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하루 전날이다. 부실수사 질타를 받을 게 뻔한 새 청장에게 힘을 보태려 일부러 흘린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절묘한 시점을 택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대통령 선거 전날 밤 이광석 수서서장은 긴급 기자 회견을 열고 국정원 여직원 김모(29)씨의 대선 개입과 관련해 "김씨가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고 발표했다. 김씨가 노트북 하드디스크를 제출한 지 사흘만으로 제대로 조사가 됐을 리 만무하다. 후에 밝혀진 200여건 이상의 찬반의사표시와 100여건의 게시글로 보면 황당한 발표일 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편들기였다. 그래서 경찰의 정치개입 행위라는 말까지 나왔다.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당시 "초미의 관심사다 보니 결과가 나오자마자 공개했다"고 해명했지만 곧이 믿을 사람이 없다. 한 경찰 관계자도 "TV토론과 상관 없이 바로 발표했어야 했는데 TV토론 뒤에 결과를 내놓다 보니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오해만 가져왔다"며 아쉬워할 정도다.
이러니 지난 3개월 동안 지지부진하기 그지 없던 경찰 수사에 갑자기 속도가 붙은 것처럼 보이는 것도 꼼수가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이씨의 입건 시기가 여야의 국정조사 합의 및 국정원장 퇴임 시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침입사건 등 국정원이 개입된 사건 앞에만 서면 초라해지는 경찰에게 발표시점만이라도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바라는 것은 너무 큰 기대인가.
송은미 사회부 기자 my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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