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검정을 통과한 일본 고교 교과서 내용을 두고 아베 신조(安倍晉三) 내각을 비롯한 우익세력들이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탈원전을 강조한 교과서가 대폭 늘어나 여름 전력 성수기를 앞두고 원전 재가동을 서두르는 정권에 부담을 주는가 하면, 일본의 과거사를 반성한 내용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문부과학성의 검정을 통과한 일부 교과서는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를 두고 "원전 의존에서 벗어난 에너지 체계의 확립이 불가피하다"고 서술했다. 한 정치ㆍ경제 교과서는 "원자력의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다"고까지 기술했다. 원전의 대안으로 거론되는 태양력 발전, 풍력 등 재생 에너지의 필요성을 언급한 교과서도 크게 늘었다.
교도(共同)통신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의 장점을 병기하고 원전과의 공존 가능성을 거론한 책도 있지만, 분량은 미미하다"고 전했다. 이날 검정된 교과서는 내년도 신학기부터 일선 학교의 교재로 채택된다.
아베 총리는 난처해졌다. 탈원전을 강조하는 민주당과 달리 아베 내각과 자민당은 원전에 의존하지 않고는 경제발전을 지속시킬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당장 올 여름 전력 성수기를 앞두고 원전 재가동의 필요성을 강조하려던 계획에도 비상이 걸렸다.
과거사를 다룬 내용에서 일본의 잘못을 인정하는 표현도 다수 실렸다. 시미즈 서원의 일본사 교과서는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 기존의 '위안부로 연행되는'에서 '일본군에 의해 연행돼'라고 수정했다. 이는 아베 총리 등 우익들이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8종의 일본사 교과서는 태평양 전쟁 중 오키나와(沖繩) 주민들이 일본군의 강요로 집단 자결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전환하려는 아베 총리의 움직임을 우려하는 내용도 있다. 시미즈 서원의 현대정치ㆍ경제는 자위대의 해외 활동이 '헌법이나 안전보장정책의 원칙에 반하는 판단'이라고 명시했다. 짓교출판사의 일본사는 '자위대가 해외에 기지를 두는 것은 위헌 소지가 농후하다'고 적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은 사설에서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 자체가 없을 뿐 아니라, 군이 연행한 사실도 없다"며 "(오키나와 주민의) 집단자결이 군 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등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교과서 전국네트 21 사무국장은 "자민당과 아베 정권이 교육재생을 내세워 앞으로 교과서 검정제도를 개악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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