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식에 희비가 엇갈린다. 첫째는 고등학교 교과서에 대한 문부과학성의 검증 결과다. 일본사와 세계사, 지리, 정치경제 등 사회과목 교과서 21종 가운데 독도 관련 기술을 담은 게 15종이다. 6종의 교과서는 일절 관련 내용을 담지 않았지만, 2009년 고등학교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개정으로 강조된 '영토문제에 대한 이해 심화'는 거의 관철된 모양새다.
이런 결과가 나오기 직전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포기가 궁극적 해결책이라는 일본 지식인의 주장이 있었다. 최근 출간된 (사계절 펴냄)에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가 밝힌 내용으로, 일본에서 더러 제기된 '독도 포기론'의 하나다.
일본의 독도 인식이 확연하게 갈린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같아 보이지만, 그 점유율은 변했다. 과거 일본에서 독도 영유권의 공개적 주장은 사회적 소란이 존재 근거였던 우익단체에 국한됐다. 일본 정부가 그런 주장을 노골화하고, 미래세대에 그런 인식을 심기 위해 교육과정에 이를 적극 반영하기 시작한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사이 와다 명예교수와 비슷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줄어든 흔적은 없다. 정부를 중심으로 공적 부문의 의식 편향 강화로 전체 인식의 균형이 그 쪽으로 더 기울었다.
둘째 소식은 반가웠다. 교토부 의회가 광역의회 최초로 군대위안부 피해 여성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일본 정부에 촉구하는 결의를 했다. 시민단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간사이 네트워크'의 꾸준한 노력의 결실이다. 이들은 2008년 이래 39개 기초의회가 같은 취지의 결의를 채택하는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정치적으로 일본 진보세력의 본거지라 할 만한 교토의 특별한 지역 분위기가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문부과학성의 검정 결과에서도 독도 문제를 제외한 역사기술은 대체로 제자리 걸음, 또는 일부 개선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한 세계사 교과서가 '강제 징용'을 삭제한 반면, 일본사ㆍ세계사 교과서 12종 중 9종이 군대위안부 관련 기술을 담았다. 일부 교과서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나 유엔인권위원회 권고를 덧붙였고,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상술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우려는 남는다. 일본 정부의 기본 방침인 '독도ㆍ역사 문제 분리 대응'이 문부과학성의 검증에 반영됐으리라는 짐작 때문이다. 독도 문제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탈 역사 속에서 보는 한국과는 달리 독립적 영토문제로 보려는 일본 정부의 시각이 날로 굳어지는 양상이 심상찮다. 교과서가 미래세대의 인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에서 앞으로도 오랫동안 양국 갈등의 불씨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아베 신조 총리 정부의 자세에서 비주류 특유의 변방의식과 조바심이 읽히는 것도 불안하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현재의 마치무라파는 후쿠다-아베-미쓰즈카파의 후신이다. 지금이야 최대 조직이지만, 과거 수십 년 동안 제2파벌로서 제1파벌인 다나카-다케시타-오부치파에 밀려왔다. 그런 집단강박이 아직 남았고,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독도 문제에 대한 자세다.
과거 오부치파의 정치는 달랐다. 일본에서 독도 문제의 출발점인 시마네현이 낳은 최대 정치거물이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 그 다음이 아오키 미키오 전 관방장관이다. 둘 다 지역구의 요구에 귀를 기울일 만했지만 나라 전체를 이끌고 위기관리의 최종 책임을 진다는 제1파벌 특유의 주류의식이 더 강했다. 어차피 영유권 주장을 관철할 가능성이 전문한 마당에 문제를 부각해 사소한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것보다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앞세웠다. 그런 주류의식이 정치적 자신감과 함께임은 물론이다.
교과서 검증이 끝나 공은 한국에 넘어왔다. 인사 파문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주류의식을 확고히 다잡아야 적절한 대응과 수위조절이 가능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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