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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뺨 칠 진주, 진흙 속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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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 뺨 칠 진주, 진흙 속에 숨어 있다

입력
2013.03.26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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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텔레콤에는 노점상 출신 마케팅 전문가가 있다. 지난해 해외에서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노점상을 했던 K씨를 신입사원으로 전격 채용했다. 해외에서 공부했다는 조건보다 노점상을 한 그의 열정과 끼가 우선 고려됐다.

기업들의 채용 방식이 확 달라지고 있다. 출신 학교와 전공, 영어점수 등 소위 입사를 위한 스펙을 따지는 대신 숨어 있는 끼와 재능 발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더 이상 획일화된 조건, 뻔한 채용 방식으로는 숨어 있는 인재를 찾아내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이 대표적이다. 삼성은 올해 처음으로 인문계 전공자를 뽑아 소프트웨어 개발 교육을 시켜 개발자로 활용하기로 하고, 우선 삼성SDS에서 지원서를 받았다. 지난 22일 원서 마감 결과 2,000명이 넘는 인력이 몰렸다.

특이하게도 인문계 전공자에게 소프트웨어 교육을 하는 이유는 인간을 이해하는 감성적인 개발자, 이른바 '통섭형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다. 한마디로 창의성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형 인간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은 "감성을 중시하는 미래에는 인문적 소양을 갖추고 기술을 이해하는 통섭형 인재가 중요하다"며 "여기에는 기업이 어떤 인재를 원하는 지 몰라 업무와 상관 없이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고 어학 연수를 다녀오는 잘못된 취업 관행을 극복하려는 취지도 담겨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도 올해부터 지원서 항목을 기존 28개에서 20개로 줄여 간소화하고 얼굴을 가린 상태에서 모의 면접을 보는 '5분 자기 PR'을 온라인 화상 면접으로 확대했다. CJ도 서류전형 시 지원자의 이름 출신학교 사진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을 실시한다. 그 결과 지난해 현대차에는 여자 축구부 주장 출신이나 발명가 등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했고, CJ에는 게임 전문가 및 오디션 프로그램 지원자 등 톡톡 튀는 경력자들이 몰렸다.

SK는 바이킹 챌린지라는 독특한 인력 채용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학력 외국어 점수 등 소위 '조건'을 완전히 배제한 채 개인 오디션 형태로 끼와 재능만 보는 선발 방식이다. 탐험과 도전을 즐기는 바이킹족처럼 고유한 특기나 경력을 가진 인재를 가리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전국 6개 도시에서 아예 합숙을 하며 선발 과정을 진행한다. SK 관계자는 "바이킹 챌린지는 글로벌 성장과 신규 사업 추진에 적합한 채용 방식"이라며 "신입사원의 10~15%를 바이킹 챌린저로 뽑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도 상반기 공채부터 인성 및 적성검사를 폐지했다. 지원자의 역량을 제대로 가리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현대모비스도 오디션 방식의 블라인드 면접을 통해 5분 동안 지원자들이 연설이나 노래 춤 등 각자 개성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각자의 장점을 직접 알리는 과정을 통해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사람을 뽑겠다는 취지다.

이런 새로운 채용 물결은 공공기관에도 번지고 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올해부터 성별 나이 등에 상관없이 누구나 직원 채용 과정에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자기소개서도 지원동기나 성장과정 등 형식적 내용이 아닌 인턴 근무 경험 등 직무수행 활동을 적도록 바꿨다. 나이 제한을 철폐한 공무원 시험에 이어 공공기관에서 조건을 완전히 없앤 채용은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탈 스펙의 끼와 재능을 보는 채용 문화가 대기업을 넘어 중소기업으로, 공공기관으로 확대되어야 뿌리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 SK 등 주요 대기업이 시행하는 고졸 출신이나 지방대 출신 공채는 조건 위주의 인사 장벽을 허무는 시발점"이라며 "정부도 기업들의 이러한 변화가 1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제도적 지원 장치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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